[복효근]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몰래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해 강물에 몸을 담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동안
누우떼는 강을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 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누우떼는 강을 어떻게 건너나요?
누군가의 죽음에 빚지고...
누군가의 죽음을 담보로 ...
강을 건너가지요.
강을 건넜다구요?
어쩌면, 강을 건넜지요.
어쩌면, 몇 년 뒤에 다시 강을 건너겠지요.
어쩌면, 몇 초 후에 강이 나타날 수 도 있지요.
그럼 또 어떻게 강을 건너나요?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누군가의 죽음을 담보로...
강을 건너가겠지요.
지금은 생각지 않을래요.
내 삶에 빚진 생명.
내 삶을 담보로 간 생명.
강을 붉게 물들이며 죽어가던 눈빛을 지금은 생각지 않을래요.
또 강이 보인다구요.
강을 건너야한다구요?
몇 개의 강을 건너고나니 이제 보이는 것 같아요.
첩첩이 쌓여 담벼락처럼 높은 강들이...
저 강을 모두 건널거냐구요?
아니요.
어느 날에는 분명히 강을 건너기가 지겨워지겠지요.
그럴 때가 있지 않겠어요?
악어의 커다란 입이 더 평화로워 보일 때가 있지 않겠어요?
그때가 되면 그들을 생각할 거예요.
내 삶에 죽음을 바친 누군가를,
내 삶을 담보로 잡은 누군가를,
그럴 때가 있지 않겠어요?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다
그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겠어요?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 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언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