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김종삼] 투병기
발비(發飛)
2008. 4. 22. 19:52
투병기
김종삼
한밤중 나체의 산발한 마녀들에게 쫓겨다니다가
들어간 곳이 휘황한 광채를 뿜는 시체실이다 다가선 여러 마리의
마녀가 천정 쪽으로 솟아올라 붙은 다음 캄캄하다
다시 새벽이 되었다 뭘 좀 먹어야겠다
밤이 좋아.
마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교묘한 웃음을 흘리며... 잠시 고개를 돌려 그 모습을 숨기고.
배시시...
그런 밤
온 몸 땀을 뻘뻘 흘리며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마녀가 한 방 가득이다.
몰아세운다.
끌려간다.
닭들이 빨간 눈으로 빨간 벼슬을 흔들면서 훼를 쳐댄다.
퍼더덕 깃털을 뿌리며 천정에 머리를 박고.. 내게로 떨어진다.
마녀의 촉감으로...
부드러움 혹은 섬뜩함.
훼를 치며 울어라.
머리를 싸메고 더 크게 더 크게 울어라.. 날아라...
밤이 좋아.
고개 돌리며 배시시 웃을 수 있는 밤이 좋아
새벽이 오면 날지 못하는 빨간 눈의 닭처럼 천정에 머리를 쳐들고 울어대는 마녀....
가 생각나는 새벽같이 해 뜨는 저녁.
바닥에 눈을 붙이고 누운 저녁.
새벽같은 저녁에 뭘 먹는다면...
마녀는 지치지도 않고 밤새 '밤이 좋아' '밤이 좋아' 하며 배시시 고개 돌려 웃으면 천정에다 머리를 찧을 것이다.
즐길 수 있는 시간은 밤이다.
낮은 너무 환해서 내 몸과 마음을 내놓고 드러내기에 민망했다.
하여 밤이 되면 빛과 어둠을 조절하면서 나를 드러내고 감추고 선택적 나를 만들어 내민다.
밤을 즐긴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마녀가 된...
머리를 찧는다.
.
.
.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