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아버지
-동생과 통화를 하고 있는 아버지
-동생에게 손가락이 다 펴지시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하신 아버지
-혼자서도 양치를 하시는 아버지
1.
아버지는 퇴원하시는 것을 마땅찮아 하셨다.
당신은 기억하신다.
자신이 얼마나 완벽주의자이며, 누군가에게 지기도 싫어하시며, 방해받기도, 방해하기도 싫어하는 사람이었던 것을 말이다.
평생 몸담으셨던 학교에서
평교사시절, 아버지는 거의 대부분을 남학교 학생과에 근무하시면서 늘 기다란 지휘봉을 들고 다니시며 학생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수업이 끝난 후면 하얀 테니스복을 입으시고 테니스를 치셨다.
교감선생님이 되시고, 교장선생님이 되신 후에는 같이 근무하고 계신 선생님들과 재미나게 지내셨다.
학생과 시절의 무서운 아버지와는 다른 모습이셨다.
여유를 가진 넉넉함으로 선생님들을 장악하셨다. 그건 지금도 놀러오시는 선생님들을 뵈면 알 수 있다.
그런 생활은 완벽주의적인 성격에 나오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제 몫을 하고자 애를 쓰시는 셋팅말이다.
어린시절부터 홀로 어른이어야 했던 사람들의 특징이겠지.
그런 아버지가 자신이 몸이 불편해진 상태, 딸의 이름을 포함한 사물들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상황에서 예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시는 것이 무서운 듯 했다.
차라리 재활병동에 계시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틈에서 서로에게 여유로운 웃음을 보내고 다독이며 사는 것이
더 맘이 편했을 수도 있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아버지를 모시고 퇴원을 했다.
긴장하는 얼굴빛이 역력하다.
미국에서 쓰러지셔서 휠체어로 비행기를 타고 내려 병원으로 실려오신지 2개월이다.
2.
집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낙동강이 보이는 베란다로 나가 서서 한참을 서 계셨다.
3.
미국에서 갖고 들어온 짐들을 풀었다.
짐안에는 아버지께서 미국에서 사신 몇 개의 남방과 신발이 들어있었는데...
"왜 엄마건 없고, 자꾸 아버지 것만 나오는거야?"
내가 던진 이 말 한 마디에 글쎄....
아버지의 커다란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내가... 내가... 니 엄마... 옷.... 내가 ... 내가..."
잇지 못하는 말을 눈물과 함께 흘리신다.
엄마가 내 등을 치시며 아버지를 안아 달랜다.
엄마의 말은 쓰러지시기 전날 엄마의 옷을 사러갔으나 좀 더 좋은 거 하면서 내일 다시 오자며 나왔었단다.
그리고 쓰러지신거란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울고,
엄마는 아버지에게 괜찮다며.. 다 낫고 다시 가자며... 울고,
때아닌 통곡의 시간이,
난 이 상황이 기가 막히다는 생각에 소리내어 웃었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나면서...
뭐라고 설명하기 곤란한...
그저 사는 것은 참 희한한 일을 하나 둘 씩 겪어나가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감정적으로 눈에는 눈물이 나고, 그 아래 입에서는 웃음이 나고...
3.
식사를 잘하신다.
워낙 소식을 하시던 분이라 많이 드시지는 않지만, 반찬들을 하나씩 맛나게 드신다.
얼마전까지 왼손으로 드셨다.
오른손보다는 왼손이 회복이 빨라 왼손으로 식사를 하시다가... 이제 거의 풀린 왼손은 하지 말고 풀리지 않은 오른손을 사용하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처음 왼손으로 식사를 할 때의 서툴음으로 오른손으로 식사를 하신다.
한 번도 편한 왼손으로 넘기지 않고,
좀 흘리고,
좀 느리지만,
오른손으로... 그러다가 수저를 떨어뜨리거나 수저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갈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왼손으로 문제의 오른 손을 손가락질하며 좀 잘하라는 손짓을 계속하신다.
그런데도 짜증이 아니라 인정에 가깝다.
그런 모습이 신기하여 엄마에게 눈짓을 했더니, 아버지의 어깨를 치시며 선생님이 시키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신단다.
4.
아버지는 병원에 계실 때 내가 병원으로 가면 노래를 하라고 하셨다.
(우리가 함께 부른 노래는 애국가, 노래는 아니지만 국민교육헌장, 국기에 대한 맹세... 평생을 교단에 계시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했을 애국조회? 그것때문에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세가지는 줄줄줄 하신다.)
아무튼 그렇게 애국가때문에 시작한 노래에 대한 애정은 병실에서 황성옛터, 산장의 여인... 을 불렀다.
아버지와 나는 음치, 음치 둘이서 다른 환자들이 있었는데도.. 불렀는데,
그게 생각이 나서 유선방송채널에서 성인가요방송을 틀어드렸다.
아... 우리 아버지
밑에 나오는 가사를 따라 읽으면서.... 그런데 앉아서가 아니라 서서 몸짓까지 해가면서 노래를 즐긴다.
5.
노트북을 연결해 달라고 하신다.
리모콘의 작동법도 잊어버리신 아버지가 노트북이라니.. 평소에 거의 컴에 빠진 매니아라...
사실 난 컴퓨터의 기본을 아버지에게 다 배웠었다.
한글도 아버지로부터 시작했고,
엑셀도 아버지로부터 시작했고,
(그건 다른 이야기지만 운전도 아버지에게 배웠고, 탁구도 아버지에게 배웠고, 배드민턴도 아버지에게 배웠고...)
안된다고 발끈했다.
컴에 빠지시면 다른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재활훈련을 소홀히하면 안되기때문이다.
병원에서 워드프로그램은 30분정도 쓰는 것이 좋다고 했다는 엄마의 말에 노트북만 연결하려고 했는데, 옆에 있는 프린터를 연결해야한다고 성화시다.
화가 나기 시작해서.. 왜 프린터가 필요하냐고...
한단계씩 하자면서 내 딴에는 설득을 했으나, 막무가내시다.
화가 나서 팔팔 뛰면서 마음대로 하시라며 프린터를 연결했다.
한글 파일을 열어서 고개만 갸웃거리신다.
이게 아니라며... 이게 아니라며...
난 그것보라며... 지금은 아니라며...
옥신각신..거리다 혹시 나 싶어 최근문서를 혹시나 하고 열어보았다.
거기에 아버지께서 미국으로 가시기전 청탁받았던 비문의 원고가 있었다.
이거냐고 여쭈니 그렇단다.
이걸 프린터해서 보내줘야 한단다.
약속을 지키셔야 했던 것이다.
프린터 명령을 내려도 프린터가 되지 않아 또 열받고 있는데, 아버지가 옆에서 또 뭐라고 하시더니... 소파에 가서 앉으신다.
내가 프린터 앞에서 혼자서 끙끙거리다.... 찾아낸 것, 프린터와 노트북이 연결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프린터를 해서 의기양양 보여드렸더니,
손짓으로 두 손으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민망했던 난 잘못했다고... 그런데 컴은 안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때문에 그랬다고 했더니,
자기도 안 할 생각이라고 하신다.
그러시면서 나에게 그 긴 손가락을 가르치시면서 무릎을 꿇으라신다.
참... 속상하셨나보다.
6.
엄마의 진단은 이렇다.
"아버지는 원래 이런 모습이셨을거다. 그런데 혼자 살아오시느라 스스로 보호하느라 그렇게 강하고 완고한 모습이셨을 것이다. 지금 아버지 모습이 좋다. 원래대로 사는 거니까.. 괜찮은거다."
엄마의 힘이자 아버지에 대한 엄마의 믿음이다.
같은 집에 그대로 계신 아버지는 다른 분이셨다.
뇌의 모든 기능은 그대로인데, 사물에 대한 이름을 기억하는 회로만 장애를 입으셨단다.
내 이름을 부르려면 한참을 고민해야하고, 내 이름이라고 생각한 것이 동생의 이름이다.
우리집 호수라고 말한 것은 우리집 5층 아래의 집 호수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혼자서 뭘 잘 못하면서도 혼자 해내려고 고집을 부리는 아이같은 모습에다
빈틈 투성이인데도 지나가는 말 한마디는 놓치지 않고 열심히 듣는다.
아버지께 여쭈었다.
"집에 오시니까 좋지요?"
"어... 조아..."
아버지는 병원에서 생각하셨던 걱정을 잊으신 듯 하다.
다른 아버지다.
그런데 아버지로서는 가장 아버지다운 모습일 것이다.
병원에서 심리검사결과가 나왔을때, 아버지는 행복한 상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