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병승] 아빠
아빠
황병승
선생님,
이곳에선 모두 죽었죠
믿어서 죽고
못 믿어서 죽고
아빠 하고 부르면
우선 배가 고프고
아빠 하고 부르면
아빠는 없고
아빠라는 믿음으로
개 돼지를 잡아먹는
먼 나라의 아빠 숭배자처럼
먹어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아빠를......
선생님,
당신에겐 아빠가 있죠
당신의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있어요
아빠, 좋은 탁자다
그 위에 올라가
타닥타닥 탭 댄스를 추고
노래를 부르고
당신의 아이들은 먼 나라의 배우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 위에서 사랑을 나누죠, 아무렇지도 않게
아빠...... 그러한 믿음으로
등이 배기고 아플텐데
우리의 아빠는
아빠 하고 부르면
언제나 울상이고
아빠 하고 부르면
누가 먼저 먹어 치우지는 않을까,
언제나 걱정이 앞서는.....
선생님,
이곳에선 모두 죽였죠
밤새도록 들락거리며
믿어서 죽이고
또 못 믿어서 죽이고.
질문있어요...
무엇이든 대답해주시는 선생님께 질문있어요.
살아가는 이유가 죽는 것이라 했거든요.
살아가는 이유가 죽어서 부활하는 것이라고 영생을 얻는 것이라 했습니다.
온통 죽어서, 온통 죽어서 라는 이야기 뿐이었습니다. 그곳에서요.
언제나 내가 아팠듯 너도 아프라고 했습니다.
너가 지금 아프다고 하는 것, 그건 아픈 것도 아니야. 그 분은 너 때문에 죽었어... 니가 아픈 것에 비할바가 아니야.
나의 아픔은 새발에 피라고 했습니다. 말할 가치조차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전 입을 닫았고 말이 멈췄어요.
선생님,
그럼 이미 살아서 죽은 것이며 그 분의 목적은 달성한 것인가요?
죽어서도 살아있으니 그 분은 이제 충분하시겠지요...그럼 떠나라고 하세요.
그런데 말이죠...
오늘 아니 며칠은 된 것 같은데,
평생 다시 부를 것 같지 않던 그 분을 불렀어요. 저절로 ... 입에서 저절로 흘러내렸어요.
그런데 시인처럼 저도 말이죠.
그 분을 부르는 순간, 배 속이 텅 빈 것처럼 허기가 져요.
내 몸 가운데가 반으로 접힐 것 같은 느낌이예요.
난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그동안은 뭐였죠?
행사장 앞에서 춤추는 바람든 인형이었나요?
한 번도 팔을 내린 적없이 춤을 춘 그 인형....
안 부르고 싶어요.
상관없이 살고 싶어요. 내 아버지라고 우기는 ... 그 사람과 난 상관없고 싶어요.
언제나 나를 쪼그라들게 만드는 ...
소리치고 싶은데 소리치지 못하게 만드는 그 분을 모른 척 할래요.
세상엔 지옥인 아버지도 있잖아요..
텅 빈 듯 접히는 허리를 펴고 다시 춤을 출래요. 서 있을래요.
선생님,
아버지를 못 견디어하는 것이 죄라고 부른다면, 내가 이 세상의 죄를 모두 지을래요.
그리고 죄를 내 몸에 가득 담아버릴겁니다.
누구도 그 죄에 몸을 버리는 일이 없도록 ......
전해주세요.
그냥 내버려두라고 그러더라고 전해주세요.
포기하라고 전해주세요.
아는 척 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부르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이라고 전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