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목련
목련
김경주
마루에 누워 자고 일어난다
12년동안 자취했다
삶이 영혼의 청중들이라고
생각한 이후
단 한 번만 사랑하고자 했으나
이 세상에 그늘로 자취하다가 간 나무와
인연을 맺는 일 또한 습하다
문득 목련은 그때 핀다
저 목련의 발가락들이 내 연인들을 기웃거렸다
이사 때마다 가차의 화물칸에 실어온 자전거처럼
나는 그 바람에 다시 접근한다
얼마나 많은 거미들이
나무의 성대에서 입을 벌리고 말라가고서야
꽃은 넘어오는 것인가
화상은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다
문득 목련은 그때 보인다
이빨을 빨갛게 적시던 사랑이여
목련은 그늘이 너무 뜨거워서 우는가
나무에 목을 걸고 죽은 꽃을 본다
인질을 놓아주듯이 목련은
꽃잎의 목을 또 조용히 놓아준다
그늘이 비리다
검은 색 겨울 교복을 입었던 어느 날, 하얗게 목련이 핀 것을 보고 봄이 왔구나 생각했었다.
그리고 학교도 집도 가기 싫었다.
담 너머로 하얀 목련잎이 떨어져 지나가던 누군가의 발에 밟혀 갈색빛으로 짓무르는 것을 보고 목련을 추하다 생각했었다.
그때부터 목련이 싫었다.
마루에 누워 자고 일어난다
12년동안 자취했다
자취와 사는 것이 무엇이 다른 것인지 이 시를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나만을 위해 밥을 하고 그 밥을 나만 먹을 때 자취라고 하는 것이겠다고 결론내렸다.
[명사] 잘하든 못하든 자기 스스로 만들어 그렇게 됨.- 네이버국어사전
그렇다면 죽이되든 밥이 되든 스스로 알아서 사는 것이 된다. 원인과 결과가 모두 나,
누군가 "어떻게 살고 있어요?"하고 묻는다면 "자취하고 있어요!" 하고 대답해야겠다.
삶이 영혼의 청중들이라고
생각한 이후
단 한 번만 사랑하고자 했으나
이 세상에 그늘로 자취하다가 간 나무와
인연을 맺는 일 또한 습하다
문득 목련은 그때 핀다
삶이 영혼의 청중들, 단 한 번만 사랑, 세상에 그늘, 인연을 맺는 일, 습함, 목련
이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연.
자취라는 말과 참 잘 어울리는 말들이다.
이 말들 중에 외롭지 않은 말이 하나 없다.
따스한 말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자취라는 것이 그렇다... 목련이 그 끝에 놓였다.
저 목련의 발가락들이 내 연인들을 기웃거렸다
이사 때마다 가차의 화물칸에 실어온 자전거처럼
나는 그 바람에 다시 접근한다
얼마나 많은 거미들이
나무의 성대에서 입을 벌리고 말라가고서야
꽃은 넘어오는 것인가
화상은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다
문득 목련은 그때 보인다
내 인연으로 삼고 싶은 사람은 말이지. 뿌리가 든든한 사람이야.
뿌리가 든든해서 절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지. 그 사람은 내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더라도 그 사람은 변하지 않아.
나때문에도 변하지 않고, 삶때문에도 변하지 않고, 누구때문에도 변하지 않는 튼튼한 나무뿌리같은 사람이야.
평생 자취를 하며 앞도 뒤도 없이 살고 있는 인간이 꿈 꿀만한 상대지.
꽃을 피우기는 하지. 이건 잠시 그가, 아주 잠시 그가 , 먼데서 오는 봄바람을 누구보다 먼저 느꼈기 때문이지.
그는 무얼한걸까? 목련이 필 때...
이빨을 빨갛게 적시던 사랑이여
목련은 그늘이 너무 뜨거워서 우는가
이빨을 빨갛게 적시던 사랑, 사랑이란 전쟁이라고 생각한 것이 너무나 오래다.
밀고 당기는 전쟁같은 사랑을 한 지 참으로 오래다.
언제부터인가 사랑은 하는데... 전쟁은 해 보지 않았다.
이빨을 빨갛게 적시는, 물어뜯고서, 피를 흘리고서도,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는 그런 사랑을 한 적이 너무 오래다.
사랑을 하면서 말을 다하지 못하는 까닭은, 이제 더는 전쟁의 성가심을 용서할 수 없는 시간이 된 것이다.
목련은 그늘이 너무 뜨거워서 운다.
싸늘한 차가움이 짙어질수록 사랑은 뜨거워진다. 그 사랑이 너무 뜨거워 운다.
나무에 목을 걸고 죽은 꽃을 본다
인질을 놓아주듯이 목련은
꽃잎의 목을 또 조용히 놓아준다
그늘이 비리다
내가 꿈꾸는 사람은 뿌리라서 그 나무에 무슨 짓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난 그를 딛고, 나무에 매달린다.
잠시 왔던 목련은 천천히 제 몸 하나 하나 털어낸다.
주루룩 세상의 공기 사이로 미끄러진다.
내가
꿈꾸는 사람 가까이로 떨어진다.
나무 그늘은 봄만큼 깊어져 어둡게 차갑게 내 사람을 덮고 있는데, 하얀 몸으로 떨어졌다.
무거운 꽃잎.
모든 것을 머금은 꽃잎.
내게 흐른 짓물이 검은 그늘 아래로 스며 그에게 닿길 기대하며...
봄이 시작 될 무렵 난 없다.
봄날의 사랑을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다.
치열했던 적이 없다.
자취처럼... 언제나 혼자 잘하든 못하든 자기 스스로 만들어 그렇게 끝날 목련 꽃잎.
어느 날 이후 난 목련이 필 때면 집에도 학교에도 가기 싫었고,
목련이 질 때면 그 목련에게 고개도 돌리기 싫었다.
목련은 언제 피는가....
언제나 영원히 자취를 하고 살아야 할 운명을 타고난 목련은 또 언제 피는가?
피었다 추락하는 목련은 또 언제나 피는가?
내가 싫어하는 목련, 내가 미워하는 목련, 눈 맞추고 싶지 않은 목련,
할퀴고 긁히고... 이 말을 두드리는데 손톱도 가슴도 다 아프다. 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