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김경주] 폭설, 민박, 편지1

발비(發飛) 2007. 9. 6. 20:28

폭설, 민박, 편지1

(죽음의 섬, 목판에 유채)

 

김경주

 

주전자 속엔 파도 소리들이 끓고 있었다

바다에 오래 소식 띄우지 못한

귀먹은 배들이 먼 곳의 물소리를 만지고 있었다

심해 속을 건너오는 물고기떼의 눈들이

꽁꽁 얼고 있구나 생각했다

등대의 먼 불빛들이 방 안에 엎질러지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푸른 멀미를 종이 위에 내려 놓았다

목단 이불을 다리에 말고

편지의 잠을 깨워나가기 시작했다

위독한 사생활들이 편지지의 옆구리에서 폭설이 되었다

쓰다 만 편지들이 불행해져갔다

빈 술병들처럼 차례로

그리운 것들이 쓰러지면

혼자서 폐선을 끽끽 흔들다가 돌아왔다

외로웠으므로 편지 몇 통 더 태웠다

바다는 화덕처럼 눈발에 다시 끓기 시작하고

방 안에 앉아 더운 수돗물에 손을 담그고 있으면

몸은 핏 속에서 눈물을 조용히 번식시켰다

이런 것이 아니다 생각할수록

떼죽음 당하는 내면들,

불면은 몸속에 떠 있는 눈들이

꿈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건가

눈발은 마을의 불빛마저 하나씩 덮어가는데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안 보인다는 혹성 곁에

아무도 모르는 무한을 그어주곤 하였다.

 

 [김경주] '폭설, 민박, 편지1' 라는 시를 가운데 두고 시의 반대편에 서서 시인과 불통한다.

 

 

마주 앉아있던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간지 열흘이 넘었지.

"밥 사주세요."

아... 반가워라...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어서 좋다!  한달음에 달려갔다.

어느 공간이던지 마주 호흡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 숨통이므로...  숨통이었었는데...

 

단호박찜를 먹으며, 반가워하며, 서로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다.

"회사는 어때요?"

 

난 자랑삼아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그 친구가 알고 있는 진행하던 원고의 진척상황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했지.

 

"언니, 언니는 그냥 소속되지 않는 독립국가가 좋아요. 언니는 그게 멋있어요."

 

그렇구나.

길들여지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의 길들여짐에 대한 느낌은 업무에서가 아니라 나의 내면(머리라고 말해야 할까 가슴이라고 말해야 할까).

퍼뜩 든 생각은 내 머리 속을 헤집어보면

셋팅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조직에.

 

어제 한 저자를 만나 출판사의 운영체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저의 회사의 진행방향이 저 개인의 생각과는 다르더라도 전 회사의 진행방향의 편에 서서 이야기 할 것이고 또한 따를 생각입니다."

하고 나는 단호히 말했었다.

 

한 조직에 소속되어 살면서 그 조직의 결에 따라 몸을 맞추어 살아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역린(거슬러 올라난 비늘)이 다른 조직원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아무리 지대하고 훌륭하더라도 다수의 중요함에는 미치지 못한다.

 

단호박찜을 먹으며 그 친구가 나에게 독립국가이기를, 신생국가이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두리번거림이 맘에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낯설고 처음 가는 길은 사방을 살피며 천천히 걷게 되듯

처음 먹는 음식은 천천히 수저를 놀리며 입안에서 감상하게 되듯

 

그렇게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겠지. 내가 말이지. 난 내가 그걸 바라는지 아닌지 솔직히 모른다.

그저 이 시인처럼 언제나 낯섬. 그래서 작은 것이 보이는 것이 좋다.

내 몸이 아니라 나의 내면(가슴인지 머리인지)가 그런...

 

내 몸이 사회에 길들어져서 오토메틱으로 움직이더라도, 그러면 그럴수록 나의 내면은 따로 굴러가길 바란다.

난 이 곳에서 독립국가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시인이 말하는 내면이 독립국가이기를 바란다.

낯선 곳에서 폭설을 만나 허름한 민박집, 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곳에서의 하룻밤,

그 곳에서 쓰는 편지 한 장은 얼마나 간절할 것인가.

편지를 한장을 보내려는 상대는 그 순간 얼마나 간절할 것인가.

갖고 있는 모든 것들이 절대적으로 간절할 수 있도록 난 신생독립국의 내면을 고수했으면 한다. 그래... 그래...

 

단 한 시간 점심을 같이 먹었을 뿐이지만 하루가 충만해지는 좋은 시간이었다.

나의 내면이 내가 아닌 것에 연합하려고 기울고 있을즈음,

나는 언제나 신생독립국가임을... 언제나 자가발전하는 독립신생국임을 다시 한번 새기는 시간이었지.

 

단호박찜을 나눈 익숙한 친구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지금 이 사무실의 낯섬에서 내 내면은 그 친구에 대한 간절함으로 다시 한 번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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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나는 떨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하지만,

딱 한 사회에 나를 포함시키는 것은 아니지.

어느 사회나 옮겨다닐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