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改善)
아침부터 뭐가 어긋나는 느낌이 강하긴 했었다.
지난 주에 미리 보내놓은 앞표지 뒷표지 앞 뒤 날개, 띠지의 카피들이 표지에 잘 안착되었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표지디자이너에게
전화를 했다.
표지 보여주세요!
왜 가격은 왜 안 보내요?
앗! 가격을 아직 결정하지 못했네요... 잠시만요. 곧 전화드릴께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지.
가격을 어디 혼자만 결정할 수가 있나... 어찌된 셈인지 가격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나누지 않았다니...
번역해두고, 초벌교정까지 봐두고 묵혀둔 책이 아니던가...
부장님께 전화를 했는데... 불통이다. 또 불통이다. 또또 불통이다.
일이 안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을 매끄럽게 진행하지 못하는 내가 못 견뎌서... 팔짝 팔짝 뛰었을 것이다.
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부장님이 오셔서 가격이 정해지고 전화를 했지.
알았어요. 곧 올릴께요.
네.
웹하드에 올린 화일을 열어보니, 도비라가 없다.
도비라는 왜 없어요?
언제 해 달라고 했어요?
도비라는 당연히 해 주는 거 아니예요?
당연히가 어디있어요? 본문 � 올려줘요.
본문디자이너 � 아닌데요. 인디자인인데요.
아무튼 본문디자이너에세 본문싸이즈 받았으나, 필요한 것은 여백이었지. 다시 여백싸이즈 불러주고...
왜 이 사람과 만나면 문제가 많이 생기는 건지.
한창 잘 나간 디자이너라 했다. 쬐금 까탈스런 성격에다 두번 말하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몇 번 일을 하면서 이 디자이너가 점점 껄끄러워졌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일을 하면서 점점 더 편해지는 것에 반해 점점 더 껄끄러워졌다. 이건 곧 징크스처럼 작용해 꼬인다 꼬여!
끝내 일이 벌어졌다.
띠지가 너무 얇아요. 좀 넓게 잡아주세요.
뭐가 얇아요. 다 그렇게 해요.
안돼요 얇아서 자꾸 벗겨져요.
뭐가 얇다는 거예요? 그게 보통 사이즈예요.
그건 **디자이너의 보통이고 여기는 보통이 아니거든요.
.
.
그러면서 옥신각신하다
알았어요.
그리고 잠시후
늘여서 올려놓았어요. 그런데 카피 글자 하나 안 보일거예요.
그런게 어딨어요? 카피를 바꿀 시간을 주세요.
그럼 또 바꾼다는 말이예요?
그냥 갈 순 없잖아요. 책은 만들어야 할 것 아니예요.
나 정말 기분나쁘거든요. 대체 뭐예요. 왜 이렇게 매끄럽게 못하는거예요? 한꺼번에 수정하면 되지 왜 몇 번이나 수정하고..
제가 전화한 거 아니잖아요. 전화하셨으니 마침 이야기를 한 건데 왜 그렇게 화만 내는건데요?
다시 옥신각신...
그리고 잠시후
그럼 다 끝난 건가요?
아직 표지 교정 안 봤잖아요. 교정보고 전화하려고 했는데 미리 전화하셨으니 또 전화를 하게 되는 거 아니예요!
정말 미치겠네.
오늘은 이제 그만하는걸로 하죠. 저도 오늘은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끊었지.
사실 그 사이에 짜증스럽게 한 것에 대해 약간의 반성은 오고 가긴 했지만, 그건 예의상이었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터질 듯이 괴롭다. 아무도 말 시키지 말아줘.
화가 난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매끄러운 진행을 하지 못한 나에게 더 많이 화가 났던 것이 분명하다.
핑계를 그에게 돌리는 것이 그 순간 나의 최대 과업이었다.
잠시 침묵하면서 눈을 감고 ....
삭혀야 하느니라.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빌미를 주지 않는 일을 해야한다는 것, 일에 있어서도 철통같은 방어가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문자가 들어온다.
"제가심했습니다.기분푸시고하지만생각해보면일은쉽게된편이니마무리는기분좋게하죠."
와우!!!!! 정말 그때의 기분이란...금방 답을 보냈다.
최고입니다.감사하구요 다른것이아니라관계가개선되어가장기쁨.앞으로일을진행하는데더욱정성을기울일계기가될것이라생각합니다
섣불리 그를 판단한 것이다. 그랬으니 그에게 화를 낸 것이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판단을 보류했다면 좀 더 냉정히 나도 그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일이 리듬을 타지 않은 것이다. 리듬을 타고 흘러가지 못하고 한마디로 삑사리를 낸 것이다.
누구든 끝까지 판단을 보류해야한다.
누구라서 누구를 판단할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행복했다.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아 행복했고, 관계가 개선됨이 더욱 행복했다.
개선될 계기가 될 것 같은 생각에 행복했다.
끝까지.... 끝까지... 현재의 사람들을 끝까지 보류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