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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발비(發飛) 2007. 7. 1. 12:45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오랜 떠돌이 생활이었을 것이다.
오래다고 말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그 날들을 셀 수조차 없는 날들이었을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하늘에서 한 획이 떨어지고 있었다.
소원을 빌 틈도 없이 또 한 획이 떨어지고 있었다.
소원을 입에서 떼지 않으려 입으로 중얼거리면 중얼거리며 또 한 획을 만났다.

파키스탄 훈자의 게스트하우스 앞 뜰에 긴 나무의자에 앉아 목을 90도로 꺾었었다.
그리고 하늘을 보고 있었다.
유성들이 하늘에 획을 긋는다.
유성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소원을 빌면 된다기에 소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획을 긋고 유성이 떨어질 때마다 아--- 하는 소리만 나올뿐 몇 분간 집중하고 준비한 소원은 한번도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이 시를 읽고야 알겠다.
수십개의 유성을 하룻밤에 보고도 단 한번의 소원을 빌지 못한 이유를...

이탈- 자의든 타의든 질서에서 벗어난 생명이었다
회귀- 질서, 틀로 돌아가고 싶기도 한 생명이었다
시간- 궤도에서 멀어질수록 시간은 셀 수없는 제곱으로 흘러간다


거의 영원에 가까운-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다가 ....

그러나 획하나를 그으며 추락하는
추락하고는 흔적도 없이 어느 구석땅에서 평장되고 마는 이탈자.

결국은 그랬구나

우주를 떠도는 시간들

제법 커다란 몸덩어리 안에서 점점 터를 넓히는 관념 속을
티끌보다 작을 '나'는
머리와 가슴의 규칙적 운동의 길잡이인 궤도를 이탈하여 제 멋대로 떠돌고 있었구나.
머리의 기다림과 가슴의 기다림은 가끔씩 통증으로.

머리를 쪼는 듯한 고통
가슴을 뽀개는 듯한 아픔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하늘을 떠돌다 별똥별로 떨어지는 자유별의 결론이나
내 몸뚱아리를 제 우주삼아 머리와 가슴 사이를 이탈에 이탈을 반복하며 떠돌고 있는 '나'라는 별이나


결국 그 끝 점은 머리와 가슴사이에 한 획을 그어, 그 선을 이어주며 사라질....
제 생 전체에 우주라고 생각하며 떠돌던 어느 한 곳에서 사라질....

제 생 전체를 우주라고 여기며 살던 몸이 산산히 흩어질 세상 어느 곳에 몸 우주와 함께 사라질...

자유.
자유의지.
편히 숨 쉴 자유.

아직 내 머리와 가슴이 멀리 있어 '나'라는 작은 별은 쉬지 않고 이탈에 이탈을 반복하고 있다.
나라는 우주 안에서 말이지......

파키스탄 훈자의 유성들에게 빌 걸 그랬다.
나도 획을 긋게 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