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하] 哀人
哀人
-관계에 대한 고집
이민하
그는 나를 애인이라 불러요 거미줄 쳐진 내 몸에 집을 짓고 살아요 나는 그를 거미라 불러요 아흔 개의 다리로 옭아매는 그를 무심하게 키워요 그는 나를 불구라고 불러요 팔레트에 물감만 뒤섞는 손을 망치로 탁탁 두들겨 화병 속에 꽂아 두어요 나는 그를 마부라고 불러요 그의 허리를 감고 창가로 달리면 그는 시커먼 망토로 창문을 불길러 버려요 그는 나를 피아노라 불러요 그의 손가락이 닿을 때 이어지고 끊어지는 나의 숨결을 아주 좋아해요 새파랗게 비가 오는 날엔 그와 나의 몸에서 우수수 피아노 건반들이 떨어져 내려요
그는 나를 ?라 불러요 나는 그를 ?라 불러요 내몸에서 반음들을 빼먹으며 그는 나를 사랑해라 불러요 나는 그를 몰라라 불러요 그는 나를 영원히라 불러요 나는 그를 못살아라 불러요 그는 나를 ?라 불러요 나는 그를 ?라 불러요 그는 나를 영안실의 국화라 불러요 나는 그를 쿠쿠라 불러요 그는 나를 안녕이라 불러요 나는 그를 그래라 불러요 그는 나를 ?라 불러요 나는 그를 ?라 불러요 그는 나를 부르기 위해 종일 좇아다녀요 나는 그를 버리기 위해 종일 좇아다녀요 서로의 앞모습은 볼 수 없어요
그렇다.
관계에 대한 고집은 서로 다른 부호를 가지는 것이다.
서로의 부호를 지키려는 것이고, 서로의 부호를 놓치않으려는 것이다. 관계라는 것은 그렇게 일방적이다.
어떤 이름으로도 같이 불리워질 수 없는 것이 관계이다.
그렇다면 관계라는 것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런 관계속에서 사는 것, 애인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관계에서 낙오된 애인들로 가득하다.
관계... 정반합이 이루어진 관계가 있기는 한 것인가?
정반합의 관계가 이세상에 존재하기는 한 것인가?
이민하 시인의 시에는 참 많은 부호가 등장한다. 내가 가진 부호다.
이 시에 나오는 부호가 한글파일에서는 인식되고 인터넷으로 올라오면서 인식불가능이듯
우리들의 관계라는 것도 인식되지 못하는 것,
그렇지만 나만이 저 자리에 무엇이 들어가야 할런지 아는 것,
아무리 설명해주어도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관계이다.
실체를 안들 다시 내 것과 그의 것을 같은 모양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관계의 성립이다. 함께라는 말인데.... 관계라는 것이 가능할까? 관계라는 것의 이름으로 서로의 부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난 뭐냐? 하고 소리치지는 않을까?
난 아무것도 없어....난 내가 아니야.. 내가 너야 ? 하고 너에게 소리칠지도 몰라.
영원히 관계하면서 절대 관계가 될 수 없는 인간들.....
고집을 피우지 말자면서도 고집을 피우게 되는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