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후기] 국수
국수
박후기
국수를 말아 먹다 문득
국수에 대해 생각한다
넘치지않는
한 국자 뜨거운 국물로도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것은
국수와 내가 다르지 않다
얼어붙은 탁자 위에서
주르륵 미끄러지는 국수 그릇이여,
나 역시
멀건 멸치 국물처럼
싱겁게 사는 내가 싫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오늘은 성탄 前日
잠들지 못하고 아비를 기다리는
어린 것들의 눈동자를 생각하며
나는 언 땅을 짚고 일어서야겠다
바닥에 엎질러진 국수와
내가 다르지 않은,
늦은 밤 포장마차 전등 밑
잠을 깨어 어제 올린 시를 보는
다시 읽어보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시계바늘 똑딱이는 소리를 배경으로 소리내어 읽어보는
캄캄한 새벽.
마감때문에 정신없을 아르바이트사무실을 예견하며,
근무시간 꽉 채워도 시간이 모자랄 것을 예견하며,
그래도 이틀을 대마도에서 보내기 위해 부산행 버스를 향해 정신없이 뛸 것도 예견하며,
지금은 너무나 조용한 새벽.
이 새벽이 멸치국물 흘러내리는 비닐 깔린 포장마차의 프라스틱 탁자이며
이 새벽에 눈을 뜨고 있는 나는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하는 시인이며
멀리서 누군가가 김오르는 포장마차의 한 시인을 본다면,
세상 참 멋지게 사네, 그렇게 풍류가객으로 사는거야. 하고 부러워하는 눈길을 보낼 것이고,
멀리서 누군가가 명절에 대마도행 씨플라워호를 예약해 놓은 나를 본다면,
세상 참 멋지게 사네,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건데, 하고 억울한 눈으로 나를 볼 것이고,
그런데 시인은 포장마차에 홀로 앉아서 홀로 편히 쉬고 싶다하고
나도 대마도행 표를 끊어놓고도 어딘론가 떠나고 싶다하고
아직도 고등학교 때 가장 밑바닥을 헤매던 수학시간인 듯,
열심히 외는 공식이 적용되는 문제는 앞의 5문제 정도, 보람차게 푼다 싶으면 언제나 남감했던,
나머지 20문제. 소위 응용력이라는 것, 융통성이라는 것,
우리 모두가 한 공식안에 대입되는 간단한 수식이면서, 예외라고 외어야 했던 모든 것임을 .....
내 앞에 있던 그, 그녀, 그 분, 저 분, 그 놈 , 저 놈.... 들 모두 나랑 똑같은데 하면서도 꼭 외워야 했던,
그, 그녀..... 등의 사람들이 두세번의 만남 후에 나를 보고는 내가 알던 그 아이가 아니야 하고 이제부터 외워야 할 대상이 되는 듯 아니면 이미 외우는 단계가 끝나고 응용의 단계인 듯
나를 관찰하고 대입하기 시작했던 그들
나 또한 예외라서 외워야 할 대상이 된 모두를 암기력 부족이라는 핑계로 하나로 뭉뚱거려놓고,
그, 그녀, 그 분 .... 이 아니라 그들이라며 모두 같은 공식에 대입하고 응용하고 실용해버리는,
우리는 서로에게 그랬다.
지금 우리는 서로의 예외 조항을 외우기를 포기하고 그들이라고 묶어두고는, 응용하고 적용하고 실용하려고 우격다짐으로 세상에 집어넣고 있다. 참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오직 물리적인 에너지만이 필요한 원시인으로 다시 돌아갔다.
국수를 말아먹으며,
모질게 추울 때 뜨거움만으로 국물을 마시고 몸을 녹이다가도
내 안에 피가 돌기 시작하면 찾아드는 적막감 같은 것, 피곤함 같은 것,
그리하여 세상은 내게 언젠가부터
싱거운 국물마저도 건네주기를 거부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외롭다며, 피곤하다며, 무겁다며 국물과 함께 드러누워 버릴 나를 세상은 이미 알고 있을 일이다.
잠깐의 피돌림에도 피곤이 몰려올 수 밖에 없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다.
짧은 여행을 떠나는 오늘, 지금 새벽에 싱거운 멸치국물을 마신 듯 피곤이 몰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