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복효근]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발비(發飛) 2007. 1. 15. 19:23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 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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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정도? 일당벌이 먹고 사는 일에 온통 정신을 다 쏟았다.

일당벌이의 좋은 점, 생활에 압박은 있지만 가난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자유구나라고 느끼는 날 한 시인을 떠올린다.

적당한 위트와 사색과 격을 함께 가진 시인, 오직 나의 생각으로.... 복효근시인.

백수로 다시 접어든 나에게 너무 깊은 우울도, 지나친 자유에도 빠지지 않도록,

삶의 한계선? 을 지울 시 한 편을 찾아나섰다.

 

그의 많은 시편들 중,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 이다.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건기라고 했다. 시인이 처음 만난 누우떼는 마침 건기에 살고 있다.

누우떼는 건기를 피하기 위해 강을 건너려한다. 

둘은 참 잘 만났다.

시인에겐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물론 시인 이전에 나중에 나오지만 영상물제작팀이 있겠지만...)

시인이라는 사람들의 눈에는 평화로움 보다는 극한 상황이 더 필요한 것이다.

시인을 찾는 손님들은 신경정신과를 찾는 이들과 같으니..... 행복한 이야기만 하는 신경정신과 의사?

아니올시다.

더불어 아픈듯이, 온 몸의 신경들이 같이 반응해 주는 그런 시인의 눈에 띄인 누우떼들이다.

이 세상의 어느 시인의 눈에 걸린 것은 다행한 일이다. 누우떼에게도 시인에게도 참 다행한 일이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어. 하필 약할 때 나타나는 것들,

힘을 가졌을 때 어디 숨어있다, 힘을 잃으면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는 것들. 정말 징한 것들.

우리가 힘을 가지기 위해 애쓴다면, 그건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자기방어라고 해야하나...

누구로부터 공격당하지 않기위해, 자유롭기 위해 힘을 가지려 애를 쓴다.

악어떼를 만나면 떨지 않고 맞이할 수 있는 무기 하나 장만하기 위해서 힘을 가지려 한다.

그것에 삶 전체를 바친다.

누우떼... 인간이 아닌 그들은 어쩌나.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만남, 둘이서 꼭 얼굴을 맞대어야 만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시의 주인공을 티비에서 만났나보다.

24시간 그냥 켜져 있을 티비에서 시인은 삶의 계시를 받았다.

그런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눈'을 가진 것이 아닐까?

지나가는 티비에서 삶을 발견해 갈 수 있는 눈,

그리고 오직 그 만의 것이 아닌 세상의 것으로 보편적인 진리하나를 끌어낼 수 있는 그의 고급스러운 결, 이것은 항상 이야기하지만 복효근 시인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멋진 시를 생산해내는 시공장 사람들 모두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악어를 발견한 시인,

그의 마음 속에 평화가 사라지는 순간이겠지. 어쩌나.... 어찌하나 보았겠지. 시인의 맘으로 보겠지.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악어가 누우를 찢었단다. 그 중 어느 놈 한 마리를 찢어겠지.

가장 약하고 힘이 없는 놈이다, 바보 같은 놈이다,

'죽어도 싸지! 너 말고는 다 살아남았는데, 바보같은 너만 먹이가 되었냐! 누구를 탓하리, 못나고 약한 너를 탓해야지.'

누우와 악어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면 2촌이상의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말한다.

'그 놈이 원래 그랬어, 그 놈이 원래 맥이 없어. 어쩌면 잘 됐는지 몰라 살았어도 화근이었을 뿐이야.'

부모자식이 아니면 그렇게들 말한다.

강물만 흐려놓았잖아!

악어의 얼굴을 하고 누우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에게 측은지심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들에게 인간이 아니길...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빚진 목숨.

살면 살수록 빚만 늘어가는 것은 통장만은 분명 아니지.

미워해서 빚지고, 좋아해서 빚지고, 사랑해서 빚지고, 불쌍해서 빚지고, 마음에 남은 모든 것들은 빚이 된다.

사람은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채무관계에 얽히게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무중력의 우주에서 유영을 하듯

모든 사람과 만나고 부딪히고 말하고 부비면서 살텐데...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저 내 몸이 둥둥 떠다니는 것이라며...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데,

중력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 지구라는 곳에서는 무의미란 없는 것이다.

서로에게 부채이며 부채를 진 사람은 어찌되었건 갚아야 한다.

다음 생에 좀 더 나은 삶으로 살고픈 '누우'라면 흐르는 피의 강물을 보며 더 큰 부담에 시달린다.

이렇게 또 업을 짓는다면 '누우'보다 더 혹된 삶으로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견디디라.

서서 잠을 자고, 혀로 거친 풀을 뜯으며 이 생에서 이 생의 붉은 강에 대한 계산을 끝내야 한다.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 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부족하다 했다. 서서 잠을 자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 것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직감한다.

좀 더 뻔뻔스러워야 하는 것인데,

나와 이야기 한 번 하지 그랬어. 그럼 다음 강을 건널 때까지 목숨이 붙어있을텐데 그랬어.

같은 것을 보고 겪어도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 있다.

어느 사람에게는 하찮은 것이 어느 사람에게는 목숨을 맞바꿀만큼 힘든 일이 있다.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묵묵히 걸어가서 이것으로 계산 좀 끝내자 하고 하늘에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피 물든 강물의 기억을 가지고 사는 것이 더 견디기 힘든 사람도 있다.

그건 좀 전에 이야기 한 것처럼 약한 자의 이야기이다.

 

희생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은 오늘이기 때문일까?

아름다운 희생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나의 삐뚤어진 눈길탓 때문일까?

 

그럼에도......이 시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담담해진다.

그런데도......붉은 강을 상상하면서도 마음과 몸이 다 같이 담담해진다.

 

담담한 것.

지구라는 곳에서 사는 우리는 이렇게 담담해져야 한다. 

(생명이 있는 모두를 우리라고 부른다. 나무, 풀, 곤충, 들짐승, 날짐승, 짐승..모두)

그 중 '사람'만 잘 하면 되지만......

 

담담함.... 언제나 그렇듯 시를 보고 눈에 읽히는 것으로 일단 데리고 왔다.

시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가 왜 이 시를 골랐는지 저절로 알게된다.

입에 당기는 음식은 몸이 원해서라는 그 단순한 원리를 적용한다.

내 마음에 결핍된 영양소, 어느 부분을 채우기 위해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을 골라 먹었다.

이 시가 가진 여러가지 영양소 중 하나인 '담담함'이 지금 내게 필요한 무엇이었다.

 

 

맛나다.

마구 당기던 음식을 한 접시 잘 먹어 치운 뒤의 행복감!

땡큐... 입니다.

 

 

 

아래를 클릭하면 복효근이라는 시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의 홈피에서 퍼왔는데, 세상은 재활용공장인 것 같네요. 그는 어디에서 쓰던 물건을 가지고 와 전혀 다른 물건으로 리폼을 하고... 또 리폼을 하고... 리폼문장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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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이는 문장들

- http://www.boksiin.com/ 복효근시인의 홈피에서 펌 

 

1. 

내가 조급해지려고 할 때...



아, 일찍 시를 쓰면 별로 이루지 못한다. 의미(意味)와 감미(甘味)가 모아지기를 한평생 기다려야 하는 것 같다. 아마도 긴 한평생을, 그러면 아주 끝에 와서 어쩌면 그 때야 시 열 줄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란 사람들이 생각하듯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감정이라면 젊을 때 충분히 가지고 있다)-그것은 체험이다. 한 줄의 시를 위하여 많은 도시들, 사람들, 물건들을 보아야만 한다. 동물들을 잘 알아야 한다. 어떻게 새가 나는지 느껴야 하고, 아침에 작은 꽃이 피어나는 몸짓을 알아야 한다. 낯선 지역의 길들을, 예기치 못했던 만남들과 이별들을, 그 다가오는 모습을 오래도록 보고 있었던 이별들을 돌이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R.M.릴케 지음. 전영애 역.<말테의 수기>



2. 

위대한 성실


語不驚人 雖死不休 :시어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죽어도 그만두지 않는다.(두보(杜甫712∼770)

시로 표현하는 일은 그로서는 목숨을 건 작업이었다. 크나큰 예술을 이루어내는 것은 "위대한 성실"이라는 사실을 두보의 시는 몸으로 보여주었다.


-당시(唐詩) 읽기. 요시까와 코오지로오 지음.심경호 옮김




3. 

창조를 위한 정관(靜觀)


그 분(로댕)은 이제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무디고 딱딱해져서 늙은 껍질로 둘러싸이듯 사람들 속에 의연하게 서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을 활짝 열어 젖히고 사물 곁에 서거나, 동물이나 인간들이 마치 그 분의 사물인 양 자기를 조용히 두드려오면 언제나 그 분은 마음을 열어놓고 계십니다. 그런 분이 바로 아름다움을 배우는 자이며 모든 것에 초심자이며 정관하는 자이며 아름다움을 모방하는 자입니다. 아름다움이란 잠자는 자에게는 언제나 그냥 스쳐 지나칩니다. 방심하는 자나 참여의식이 결여된 자에게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분이 바로 아무 것도 놓치지 않는 주의력이 깊은 자며 항상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자이며 시간을 셈하거나 다음 것을 바랄 생각도 하지 않는 인내로운 자입니다. 그에게는 언제나 그가 바라보는 것, 바라봄으로써 생기는 주위에 모든 것이 있을 뿐이며 그것이 바로 그 속에서 온갖 것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입니다.


'루 살로메에게'<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R.M.릴케지음. 홍경호 옮김




4. 

아침 해가 떠오르는 이유



힘겹게 삶의 고된 강을 건너는 사람들만이 진정 생색 내지 않는 따뜻한 손을 건넨다. 그들이 밝히는 곱고 착한 등불이 있어 아침마다 해가 떠오르는 것이다. 세상은 아직 빛을 거두지 않는다.

-박남준 지음.<나비가 날아간 자리>에서




5. 

펜혹   


펜혹이란 말이 있다.컴퓨터 세대에게는 생소한 말일 것이다.

펜이나 연필로 글을 쓰는 사람의 손에는 반드시 펜혹이 남아있다. 오래 글을 쓰다보면 펜을 받치는 가운데 손가락에 혹 같은 굳은 살이 박힌다. 그것이 펜혹이다.

펜혹은 글쓰기의 상처다. 그러나 그 상처는 시인을 만들어주는 통과의례와 같다. 나는 펜혹이 없는 시인의 손은 신뢰하지 않는다. 펜혹은 시인에게만 남는 상처가 아니다. 무릇 필업을 사는 사람들은 펜혹의 두께가 문학과 정신의 두께를 말해준다.

정일근 시인, 2001 <시와 시학 젊은 시인상 >수상 소감에서


6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것


“날지 못하는 것은 운명이라 하자. 그러나 날아오르려 하지 않는 것은 타락이다.”어쩌면 문학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비루하고 누추한 인간의 운명을 직시하고,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서부터 의미를 덧입혀 나가고자 하는 작업. 문학을 문학이게 하는 것은 바로 운명과 운명의 거부 사이의 긴장이다. 그 긴장이 정신의 깊이로 이어진다. 그리고 정신의 깊은 깊이가 느껴질 때 우리는 감동을 느끼곤 한다.

 -출처 불명




7. 

주여, 


주여, 

서로 지치기만 하고 마음만 상하는

또 아무런 소득도 없는 싸움을 피하게 하시고

남의 이목을 끌려고 공연히 자신을 어리석게 하는

옳지 않은 격분을 멀리하게 하소서.

다른 사람을 짓누르면서 언제나 그들보다 나아지려는

교만한 마음을 허락하지 마시고

내 얼굴에서 어둡고 위압적인 거친 표정을 씻어 없애주소서.

주여, 그보다도 물결이 천천히 모래사장을 덮어씌우듯이

내 일과를 차분히 채우게 하소서.

조용히 부드럽게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겸허한 사람이 되게 해주소서.

굼뜬 형제들을 기다렸다가

그들과 보조를 맞추어 함께 올라가게 해주시고

저 인내에 찬 조용한 파도의 승리를 나에게도 주소서.

물러설 적마다 그것이 전진하는 기회가 되게 하시고

드맑은 물의 산뜻함이

내 얼굴에서 배어나게 해주십시오.

또 내 영혼에는

바위에 닿아 부서진 저 물거품의 순백함을 주시고

햇빛이 물결을 노래하듯

내 인생을 당신 빛으로 밝혀주소서.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여,

주님의 빛을 나에게만 비추지 마시고

내 곁의 사람들 모두가

당신의 영원한 은총에 흠뻑 젖게 하소서.


   *연애시절 지금의 아내가 대학노트에 또박또박 적어서 보내준 시입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언어라서 오래 간직하고자 함께 나누고자 올려놓습니다.




8. 

작시, 즐거운 괴로움



추사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초서에 능했던 명필 이삼만은 일생에 먹을 갈아 구멍을 낸 벼루만도 여러 개였다고 한다. 낙숫물이 돌을 뚫는다더니, 벼루 여러 개가 구멍 나도록 그는 열심히 먹을 갈고 또 썼다.

사광은 전국시대의 유명한 악사였는데, 그는 소리를 듣는 데 방해가 된다 하여 자신의 눈을 찔러 멀게 하였다.

예술도 이쯤되면 그 이르러 간 경지를 보통 사람은 측량할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예술에서 상달경지로 진입하려면, 잗달은 기교쯤은 까맣게 잊어야 한다. 정신의 뼈대를 하얗게 세우고, 영욕도 득실도 생사까지도 마음에 두어서는 안 된다. 그 때에 예술은 비로소 참모습을 드러낸다.

-정민의 <한시 미학 산책>에서




9. 

아루나 



붓다가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한 것은 밤의 마지막 시각, 밤에서 아침으로 넘어가기 전의 짧은 시간이었다고 한다. 산스크리트어로 '아루나'라고 불리는 그 시간은 '붉은 기운을 띤' 또는 '새벽'이라는 뜻을 갖는다. 경전에서는 '샛별이 돋을 때'로 한역되기도 한다. 그 무렵의 정경을 마음 속으로 그려본다. 샛별이 눈부시게 떠오른 이른 새벽,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새벽은 미처 찾아오지 않은 시간, 하늘은 청옥빛을 띠며 점점 깊어져 바닥없는 투명함을 지닌다. 이제 곧 새들이 깨어날 것이다. 밤의 주인들은 침묵을 지킨다. 바로 이러한 정적 속에서 한 육신이 영혼의 눈뜸에 이끌려 빛을 점화한다. 세계가 알에서 깨어난다. 태초의 아침, 빛과 어둠이 나뉜 창세의 첫 날과 같은 개안(開眼)의 시간.

<편도나무야, 나에게 신에 대해 이야기해다오>에서




10. 

자왈 



크게 생각하면 공부란 것이 바로 관계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그 작은 것의 시공적 관계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빙산의 모체를 깨달아야 하고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전 과정 속에 그것을 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溫故와 知新을 아울러야 하는 것이지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탓하는 것이 이른바 존재론적 사고라고 한다면, 관계론적 사고는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는 것(不患人之不知己 患不知人也)이라 할 것입니다.

<나의 고전독법 강의>에서, 신영복





11. 

인디언 수우족의 기도문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 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언제 읽어도 아름답습니다.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