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현대문학추천집] 천상병 강물

발비(發飛) 2006. 12. 31. 15:35

 

 

추천시집/ 현대문학사편 48쪽

천상병 편/ 마산중학교졸업,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졸업

 

 

강물

 

천상병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흐르는 까닭은

언덕에 서서

내가

온종일 울었다는 그 까닭만은 아니다.

 

밤새

언덕에 서서

해바라기처럼 그리움에 피던

그 까닭만은 아니다.

 

언덕에 서서

내가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까닭만은 아니다.

 

모윤숙: 천씨의 것은 그 전 것보다 나아진 흔적이 많이 보였으므로 薦을 넣었다.

           감상적은 내용을 감상적으로 머물지 않게 한 것이 촉망되었다.

 

 

갈매기

 

그대로의 그리움이 갈매기로 하여금 구름이 되게 하였다.

 

기꺼운 듯 푸른 바다의 이름으로 흰 날개를 하늘에 묻어 보내어-

 

어제 파도도 빛나는 가슴도 구름을 따라 먼 나라로 흘렸다.

 

그리하여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날아 오르는 자랑이었다.

 

아름다운 아름다운 마음이었다--.

 

[당선소감]

 

온달(溫達)

 

천상병

 

나는 온달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리하여...... 그리하여 나는 바보다.

고구려는 멸망하였으나 멸항하여 천년이 넘었으나 온달은 멸하지 아니하였다.

바보였으므로 그는 멸하지 아니하였다. 바보였으므로 그는 멸하지 아니한다.

나도 이 바보가 되기를 원한다.

어머니는 나를 바보라도도 해주는 일이 없다. '인간이 아니다' 라고 한다.

게으르고 둔하다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보고 사람같지 않다고 한다.

바보가 될 가능성은 많다.

바보가 되기만 하면 '공주'가 나를 찾아 올 것이 아닌가!

나의 사월이 오고 나의 성숙이 익어가고 나의 풍년을 내가 네 손으로 거둘 것이 아닌가.

 

M교 시절이었다.

바다를 바라다보는 교정에는 나무가 서 있고, 나무 밑에는 잔디밭이 있었다.

그 잔디밭에서 나는 나의 '꿈' 나의 축제를 벌려 놓았었다.

내가 평론이 쓴다는 것도 그 때의 꿈 하나이었다. 나는 시평을 쓰게 되었다.

문단생활 2년간, 이렇게 나는 날을 보내고 있었다.

작가들은 다 저의 피해자(被害者)

라는 것을 아십니까그? 순번(順番)
이 선생님에게 왔습니다.

"오백환만......"

용돈이 떨어졌을 때 김말봉여사를 보고 한 말, 백환을 얻었다. 마침 없을 때 말하였다는 것이다.

수일 후 거리에서 만났더니 "이제 채무(債務)

?를 갚습니다." 라고 사백환을 주는 것이다.

소설가, 시인, 평론가 모두가 나의 피해자(被害者)

다.

나는 문단의 장난꾼이었다.

아니다. 작가를 얼마나 괴롭혀 주었던가. 나는 되도록이면 지옥에는 안 갔으면 좋겠다.

 

박순천여사의 [생리휴가]라는 문장.

나는 최근에 이 문장같이 '인간다운 문장'을 읽은 일이 없다.

문단권외(文壇圈外)에도 이렇게 진실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 나는 노력해야겠다.

여류작가들을 보고 '더 좋다'고 하다가 혼났으나...... 나는 괴로와했다.

내가 괴로와한 이유는 많지만, 이유가 없어서도 나는 괴로왔을 것이다.

'정신의 정치학'을 읽는 깊은 밤의 그 고요한 강렬. 멀고먼 내 마음이 편력. 나의 통곡.

젊음의 형벌을 나는 피해서 안 된다.

나는 젊다.

 

'나는 괴로우려고 괴로화 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내 괴로움의 독자성(獨自性)

을 존중(尊重)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이 책 어디에도 출판일은 나오지 않았다.

천상병시인이 등단할 즈음이라면 1950년즈음일 것이다.

 

이 책의 추천인은, 서정주, 유치환, 김영랑, 모윤숙, 박두진....

여기 등단시인으로는, 전봉준, 이형기, 천상병, 박재삼, 김관식, 송영택, 황금찬, 박용래, 문덕수...

그 분들의 떨리는 소감이

그 분들의 정성어린 심사평이 그 곳에 있었다.

 

천상병 시인의 시를 골랐다.

그 분의 등단소감, '온달'을 읽었다.

자판을 두드리며 손끝이 떨렸다.

그 분의 삶이 마치 철저한 계획에 의한 삶이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시인이라는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그 시발점이다.

 

감사하다.

 

짐승처럼 서러움에 울고 있는 까닭은

강물이 모두 바다로만 흐르는 까닭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