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황지우] 거룩한 식사

발비(發飛) 2006. 11. 26. 16:54

거룩한 식사

 

황지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 것이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을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 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는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1.

두부를 먹으려 했다.

 

두부와 멸치조림.... 그리고 우유.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내 주위에 두부 멸치.... 우유, 그리고 몇 종류의 야채만 있으면 행복하다.

좋아하는 것들이 몸에도 좋단다. 다행이야.

단순한 상차림을 하고 식탁에 앉았다.

 

늙은이가 된건가... 울컥, 가슴에서 식도로 역행하는 한 덩어리가 있다.

 

2.

제대로 된 밥을 먹기 위해 제대로 된 상을 차린다.

 

콩과 수수와 흑미, 현미가 들어간 잡곡밥을 짓고,

두부가 들어간 김치찌게를 끓이고,

엄마가 보낸 땅콩과 호두와 잣이 들어있는 견과조림을 작은 접시에 담고,

양파와 양상치를 깔고, 심플한 올리브소스를 끼얹었다.

가득한 상차림을 해 놓고 식탁에 앉았다.

 

쳐진 어깨의 남자가 된건가.....울컥, 눈 앞에 놓인 접시들의 음식이 빛을 잃어 멍청해 보였다.

 

3.

두 번이나 차린 상을 치웠다.

싱크대 위만 복잡하다. 그릇을 씻어둔 선반이 복잡하다. 내 맘도 복잡하다.

먹는 일은 거룩한 것이다.

나같은 인간은 거룩한 일을 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던거야.

설거지를 한참 했다.

 

 

4.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을 것을 찾는다.

배가 고파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 좀 역겹다.

 

5.

다시 상을 차린다.

 

신라면 빨간 봉지를 싱크대 서랍에서 찾았다.

열량 550칼로리. 탄수화물 단백질 칼슘 모두 한끼식사로 미달. 지방 나트륨 많이 오버...

 

라면의 생명인 꼬불꼬불한 면발 살려야 한다.

젓가락으로 젓지 않는다.

다만 라면을 한 번 뒤집어 줄 뿐이다. 좀 덜 익었다고 생각될 때 불을 끄고 뚜껑을 덮어 뜸을 들인다.

김치통 그대로 ... 냄비 그대로....

 

시도, 시인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얀 김 사이에 입김을 불어 더 하얗게, 더 맵게..... 라면을 먹었다. 만족스러웠다.

 

------ 온갖 종류의 그릇위로 라면냄비가 마지막에 올라있다. 유리그릇위에 가볍게 올라앉은 라면냄비.

 

일요일. 라면을 먹다.

몇 시간 동안 이 시와 함께 지냈다. 그가 라면을 먹었다. 나도 결국 라면을 먹었다.

 

황지우 시인의 거룩한 식사.

 

잠시 딴 소리.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갑자기 많아졌다. 아무 생각 없을 때를 기다리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