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박진성] 아라리 - 봉구 이야기
발비(發飛)
2006. 11. 2. 03:58
아라리 - 봉구 이야기
박진성
봉구는 노숙자였다 정신지체장애자 봉구를 조치원역 대합실에서 데려와 소 몰 듯 외삼촌이 대평리 목장에 부린 건 벌써 20년. 어린 내게 내밀던 소똥 냄새 가득한 봉구 손마디는 알 수 없는 공포였다 밥 먹고 일만 하는 봉구, 외삼촌에게 매일 두들겨 맞는 봉구……
맑스의 자본론을 돌려 읽던 스물의 강의실에서 봉구를 생각했다 외삼촌의 밑도 끝도 없는 착취, 최루탄 터지는 혜화역에서 울며불며 爭哥 부르며 봉구 같은 사람들이 해방되는 날까지…… 강서경찰서 강형사는 외삼촌 같았고 알 수 없는 공포였고 나는 휴학계를 써야 하는 공황장애 환자였다 세상이 恐慌이었다
봉구가 소에게 풀을 먹인다
멀리서 보면 봉구도 소다
도련님, 도련님 머리를 득득 긁고 있는 내게 봉구는
오래된 나무 등걸 같은 손을 내민다
소떼는 봉구 손짓에 이르러서야 결 고른 숨결로 돌아간다 억세게 내 손 잡고 있는 봉구의 아라리가 낸 길 따라 한참을 걸었다 소 한 마리가 길게 어둠을 내뿜는다 봉구가 오래 되새김질한 공포가 대평리 너른 들판으로 흩어진다 알 수 없는 빛, 나는 봉구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래된 라디오가 80년대 가요를 느리게 먹고 있었다
박진성 시인의 아라리 시리즈가 점점 선명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