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안도현] 섬

발비(發飛) 2006. 5. 5. 21:39

 

 

비양도를 나오며(2006.04)

 



안도현

'섬'하면
가고 싶지만

섬에 가면
섬을 볼 수가 없다
지워지지 않으려고
바다를 꽉 붙잡고는
섬이,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수평선 밖으로
밀어내느라 안간힘 쓰는 것을
보지 못한다.

세상한테 이기지 못하고
너는 섬으로 가고 싶겠지
한 며칠,하면서
짐을 꾸려 떠나고 싶겠지
혼자서 훌쩍,하면서

섬에 한번 가 봐라, 그곳에
파도소리가 섬을 지우려고 밤새 파랗게 밀려드는
민박집 형광등 불빛아래
혼자 한번
섬이 되어 앉아 있어봐라

삶이란게 뭔가
삶이란게 뭔가
너는 밤새도록 뜬 눈으로 밝혀야 하리.

 

섬은 그렇더라

시인은 섬에서 하루를 묵어본 것이리라

나처럼 섬에서 하루를 묵은 것이리라

 

텅 빈 섬

손님이라고는 달랑 나 혼자 뿐인 섬의 민박집

주인은 어디 갔는지

섬은 텅비었다

 

단 하루만 섬에 고립되리라 생각했던 밤이 얼마나 길던지

이른 새벽 해도 뜨기 전, 문밖을 나서 섬 한바퀴를 돈다

내가 찾는 것을 나 밖에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도록 은밀한 눈빛으로 사방을 살핀다

텅 빈 섬 이른 아침에

 

첫 배가 들어와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파도조차 없는 먼바다를 보게 된 이유이다.

 

섬에서 묵은 하루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