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정] 고로쇠 나무가 있는 곳 외
고로쇠 나무가 있는 곳
신현정
고로쇠나무 좋구나
하늘은 새파랗구나 좋구나
새들은 부리를 꼬부리고 마시고 가고 좋구나
오소리들은 젖꼭지 찾아 쭉쭉 빨고 가고 좋구나
방아깨비 사마귀는 핥고 가고 좋구나
고로쇠나무 좋구나
우리 인간은 물통을 놓아두고 가고 좋구나
하늘은 오만한 대로 좋구나
2006.02.11.00:54
이 시는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인터넷으로 발간하는 문학잡지인 "웹진"에 소개된 신작시입니다.
워낙 신현정선생님의 시들을 좋아하지만, 요즘은 더욱 더 좋아집니다.
그 분은 연세가 꽤 드신 분이십니다.
좋구나, 좋구나, 좋구나... 이런 시는 젊디 젊은 시인의 입에서는 나올 수 없는 시가 아닐까 합니다.
다시 한번 나이 먹어서 좋은 점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나이가 먹기는 먹어가나 봅니다. 나이이야기를 자꾸 하는 것을 보면,
아니면 뭔가 급하거나.....
시 이야기를 합니다.
하늘은 파래서 좋다하고
새는 부리를 꼬부리고 마셔서 좋다하고
오소리도 사마귀도 고로쇠 물을 마셔서 좋다하고
사람들은 물통을 갖다 놓아서 좋다하고
모두들 좋으니 고로쇠나무도 좋다하고, 거기다 다 좋으니 하늘도 좋다고 한다.
시인이 좋단다.
좋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면서 좋아할만한 것들을 본다.
역설이다.
시인은 어디에서도 좋은 것을 찾을 수 없을런지 모른다.
아무 곳에서도 좋은 것을 찾을 수 없었던 시인은 드디어 비우기로 한다.
모두 좋은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몽땅 비워버린 시인에게 세상의 것들이 하나씩 들어온다.
어떤 것과 섞이지 않은 세상 그대로를 시인은 본다.
하늘이 파랗고, 새와 오소리와 사마귀가 물을 먹는거, 그리고 사람들
그저 그것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그럼 좋은 것이다. 자연, 말 그대로 언제나 그대로인 것, 자연스러움이 당연히 좋다.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은 좋아할 것도 없을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면서 다시 맘을 잡았을 것이다.
살기 위해 채우는 것이 아니라, 생을 위해서 비우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비워서 그대로 있는 그대로를 담기로 한 것이다.
담았다.
고로쇠나무, 왠만한 병을 고칠 만큼 좋다는 고로쇠나무를 시인은 본 것이다.
시인은 자신의 시에 나온 생명들과 함께, 고로쇠나무 수액을 마시고 다시 생을 살기고 한 것이다,
넘고 넘어서 .... 시간이 지나서
시인은 이제 몽땅 비워내고 그대로 보는 것을 , 그대로 보이는데로 보는 것이 아름다운 것임을
좋은 것임을 알아낸 것이다.
시간을 지나서...
알게 된 것이다.
좋을 것 없이 없다고 그저 희망이 없어 하늘이나 좋다하고, 새나 좋다하고 사마귀나 좋다한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난 시간을 잘 보낸, 그 사이에 내공이 쌓인 시인이 고로쇠나무로 부활을 꿈꾸는 것이다.
신생
마누라하고 그거 하다가
아예 나 들어가고 싶어라
자궁 속에
우리 마누라 나 술 먹는 거 때문에 고생하는 우리 마누라
이 세상에 엄마 하나 더 삼고 싶어라
양수에 싸여 있고 싶어라
눈 없고 입 없고 그냥 커다란 무개골로 있으면서
양수 먹으면서
딸꾹질하면서
발가락 꼼지락거리면서
한 열 달 웅크리고 있다가
그만 으앙 하고 울음 터뜨리며
내 발로 걸어나오고 싶어라.
이를 어쩜 좋아.
권태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야한데 야한 것이 소재이면서,
낯을 붉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로 또 다른 자리 매김을 할 수 있는지
난 여자라도 그런 생각에 동의한다.
다시 여자의 몸으로 들어가, 엄마의 몸으로 들어가
아무것도 담기지 않는 백치의 모습으로 엄마의 몸에서 열달을 살다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꼼지라거리기만 하다가, 타자가 아니라 내가 살 준비가 되었을 때 내 발로 걸어서 세상을 나온다.
나도 그러고 싶다.
준비도 없이 밀려서 흘러 나온 것이 아니라, 내가 뭔가 할 수 있을 때
그때 걸어서 세상을 나오고 싶다.
이 이야기가 그저 이렇게 이야기하면, 누구는 그렇게 생각 안해 그럴 거이다.
하지만 그 비유가 끝내준다.
아내의 몸으로 들어가 아내를 엄마로 삼고, 그 안에서 다시 제대로 성장해서 세상으로 나오겠다는
지금의 모습을 보지 않고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힘드시죠? 곧 나아지겠죠. 당신이 찾는 자궁이 어디엔가 있을 것입니다."
시인은 즐겁게 시를 올렸지만, 난 시인의 시를 읽을 때 턱을 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