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안에 사는 妓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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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랄까?
꼭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다.
커다란 우편물 봉투를 다섯개나 들고 우체국으로 향하는 길이 참 춥다.
두꺼운 옷, 커다란 봉투, 호호거리는 숨까지 모두 짐이 되는 길이었다.
참 많은 유리들이 우체국가는 길에 있었다.
(신미식작가페루사진전액자에비친내가거기있었다)
낑낑거리며 걷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참 춥겠다. 무겁겠다.. 그랬다.
우체국에 우편물을 모두 갖다주고 돌아오는 길 가볍다.
가벼운 것은 무거움 뒤에 반드시 따라붙는다.
가벼움으로 다시 유리에 비친 나를 본다.
여유롭다. 낑낑거리지 않는다.
난 사진기를 꺼내 우체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있는 온갖 유리들에 나를 비춰본다.
나만의 게임이 시작되었다.
화장실앞, 청소년상담실앞, 공연장기둥앞, 설치작품앞, 카페유리, 바베큐그릴앞, 차고앞.
음료수판매대앞, 공연포스터앞, 공구상앞, 두부가게앞, 빌딩캠퍼스앞,,,
참 많은 곳에 나를 세워보았다.
난 거기에 희미하게 서있었다. 얼굴을 카메라에 묻은 채 나를 찍고 있었다.
배경에 따라 난 참 달라보인다.
멀리 혹은 가까이
뚱뚱하게 혹은 날씬하게
천박하게 혹은 교양있게
그저 짧은 시간 다른 유리에 각각 서 있었을 뿐인데 난 참 여러가지다.
내가 보는 내가 참 여러가지다.
이 유리들이 모두 사람이겠지.
이 유리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저렇게 보이는 대로 볼 것이다.
난 사진을 찍고 있는 건너편에 있는데,
사람들은 제 눈동자속에 들어앉아있는 나를 나라고 하겠지. 그렇게 믿겠지.
유리에 비친 내가 중요하지 않다.
찍고 있는 내가 나다.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난 내가 멋진 카페에 비춰질 때 나도 내가 만족스럽단 말이다.
바로 그것이 오류인 것이다.
벽보 떼어내 자리 덕지 덕지 붙은 유리, 그리고 셧터내려진 뒤의 유리에 비친 나는 안 이쁘다.
내가 나를 보는 것이 안 이쁘다.
그런 내가 사랑스럽지 않다.
이쁜 꽃이 장식된 아름다운 카페창으로 비친 내가 이쁘다.
그런 눈에 내가 비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은
성철스님의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 말씀처럼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난 나일뿐인데도
나에게 대해서 그런 욕심을 내게 된다.
그저 낑낑거리며 호호거리면 동동거리며 우체국으로 가던 길.
그리고 가벼움을 만끽하며, 가벼움을 즐기고자 카메라로 게임을 하던 난,
나에 대한 욕심을 엿보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잘 보이고 싶은 기생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유리에 비친 나를 보며, 타인이 나를 어찌 볼까?
그리고 다분히 잘 보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나를 발견할때면,
나에게도 기생기질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른 사람만큼? 아님 다른 사람보다 더? 아님 더 작게?
그렇지만
이왕 기생처럼 이쁘게 보이고 싶은 기질을 가졌다면, 이왕 그런 생각을 했다면
생각나는 그림이 하나 있다.
신윤복의 그림
'홍루대주紅樓待酒-기생집에서 술을 기다리다'에 나오는 입 꼭 다문 기생이고 싶다.
그 앞에 쭈욱 앉은 선비들도 입을 꼭 다물고 쳐다보더군.
그림이 작아서 잘 보이지 않겠지만, 참 무표정하게 입을 꼭 다물고 술을 기다리고 있는 기생
그런 기생을 둘러싸고 같이 입을 다물고 있는 선비들.
기생의 입이 떨어지기를 그래서 화답할 수 있기를 기다리는 폼이 웃긴다.
그런 기생이 되고 싶다.
저 기생은 아마 입을 열면, 참 재치있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여기까지 주절거리게 될 줄이야.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암튼 난 유리에 비친 나를 찾느라 한참 사진을 뚫어지게 보았다.
모두 보이지 않아서 좋은 유리에 비친 나다.
모두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되어서 나를 보일 수 있는 사진들이다.
전부를 보이지 말자!
아름다운 꽃은 밝은 조명아래서나, 어둔 조명아래서나. 일부분만 보여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앞의 주절거림 모두를
이 꽃들을 보여줌으로 전체를 반전시키고 싶다.
꽃은 어디에 피어있어도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