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어느 해 12월...

발비(發飛) 2005. 12. 8. 12:21

 

 

 

여름 휴가를 다녀와서 안톤 가스탐비드 신부님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의 핸드폰에는 밤나무길신부님이라고 입력되어있습니다.

신부님의 이름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밤나무길이랍니다.

 

오늘 아침 신부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오우, 발비나! 춥지요?"

(굳이 저의 어릴적 본명을 부르십니다)

"신부님, 신부님도 추우시죠?"

"봉화는 영하 18도예요. 그래도 안 얼어죽었어요. 한 번 와요. 안 얼어 죽게 해줄테니깐.."

"네, 신부님! 뵙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목이 메었다. 너무 보고 싶어서....

 

갑자기 왜 신부님이 생각났나하면,

[길에서 만나다]의 작가이신 조병준님의 블로그에 갔다가,

미사를 드렸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전 냉담을 한 지 벌써 십 몇 년이 됩니다. 아마 성당엘 나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나가지 않는 십 몇 년동안 신부님의 성지에서 보낸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참 많이 힘든 적이 있었습니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으로부터 도망갈만한 곳이 단 한군데도 없더군요.

아무리 찾아봐도 몸하나 숨길 데가 없더라구요.

깊은 산 중에 성지라도 있으면, 숨어들어야지 하고 찾아낸 곳에 밤나무길 신부님이 계셨습니다.

무조건 전화를 걸어 그 곳에서 좀 머물고 싶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나중에 말씀하시던데, 이상한 여자인 줄 알았답니다.

젊은 여자가 혼자서 그것도 무지 추운 12월에, 산 속으로 찾아들어오다니...

어떻게 하면 이 여자를 쫓아낼까 고민하셨답니다.

 

그 곳에서 보름이 넘도록 지냈습니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곳.

밤이 되면, 코앞도 보이지 않고 별만이 빛의 전부인 곳이었습니다.

신부님집에서 저의 숙소까지 후레쉬를 비추며 바래다 주시던 그 길엔

너구리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계곡은 밤새 얼었다가, 아침 햇살에 좀 녹았다가, 다 녹기도 전에 다시 밤이 와서 또 얼고...

계곡이 녹는 소리는 어떤 소리보다 청명했습니다.

매일 아침 산을 올랐습니다.

그 산에는 소나무만 가득했습니다.

가장 강한 나무라고 생각했던 소나무는 자세히 들여다보니,

해마다 한 겹씩 제 살을 터트리고 있었습니다.

뿌리에 돌이라도 걸리면 바로 몸이 휘었습니다.

매일 산을 오를때마다 소나무 껍질을 만져주었습니다.

산을 올라도 산을 내려와도 산만 있던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당 마루바닥에 앉아 그저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묵은 방에는 온갖 책들이 펴져 있었습니다.

한 번 씩 뒹굴때마다 다른 종류의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혼자서라도 미사를 드리시니까, 같이 미사를 드리자고 말씀 하셨습니다.

성당에 나가지도 않는 제가 미사를 드렸습니다.

저와 신부님

딱 둘이서 미사를 드렸습니다.

 

신부님

 

신부님의 강론은 단 한 사람인 저를 위한 강론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하셨습니다

밖에는 눈이 참 많이 내리는 데, 일주일에 몇 번 씩 그렇게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저 미사만 드렸습니다.

그 때도 자꾸 눈물이 났었습니다.

미사만 드리면 눈물이 났었습니다.

 

그럼, 신부님은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미사를 계속하셨습니다.

 

전 그때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더랬습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시를 그 곳에서 보내고 나왔습니다.

얼굴이 말개지는 것을 저도 느꼈더랬습니다.

 

제가 그랬지요.

"신부님, 저 여기서 살면 안돼요? 그냥 여기 어디서 살게 해주세요."

"안돼요. 절대 안돼요. "

"왜요? 전 지금 너무 편한데요."

"아직은 너무 젊고, 또 할 일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사람들과 어울려서 재미있게 살아야해요."

"재미없는데..."

"아니요, 무지 재미있을거예요. 잘 할 거예요."

그렇게 전 거기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지요.

지금?

보시다시피, 아시다시피,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아침, 조병준님의 글을 읽고 같이 목이 좀 메이면서 신부님이 생각났습니다.

지나간 것들은 마치 꿈처럼, 그저 꿈입니다.

기억이 나다가 나지 않다가 하는 그저 꿈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신부님께 가고 싶은데, 딱 하루밖에 없네요.

전 그 때완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현실 속에 뿌리 박고 살고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달력에 빨간 날짜만 기다리는 그런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부님도 저도 그런 저의 모습이 장하다고  생각합니다.

 

괜히 아침부터,,,, 주절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