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복효근] 꽃이 아닌 것이 없다 외 1

발비(發飛) 2005. 9. 1. 13:32

꽃이 아닌 것이 없다

 

복효근

 

가만히 들여다보면

슬픔이 아닌 꽃이 없다

 

그러니

꽃이 아닌 슬픔은 없다

 

눈물 닦고 보라

꽃이 아닌 것은 없다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시인이 시키는 대로 본다

슬픔이 없는 아름다움이 없다.

슬픔 곧 파열.

깨지고 찢기는 것이 슬픔이다

무엇이 되기 위해 깨지고 찢기는 것

한송이 꽃이 되기 위해 씨를 뚫고, 봉오리를 뚫고 찢고 피어내는 것

찢기지 않는다면 슬플일이 무엇이 있을까?

내가 찢겨서 내 속의 내가 나옴을...

나의 가장 깊숙한 속의 내가 나오는 찢김때문에 슬픈 것을 아픈 것을

가장 깊숙한 내가 나오고서야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말할 것을

아직은 꽃이 아닌 나

꽃봉오리도 아닌 나

이제 봉오리채 시들어버린 꽃이 되지 말아야 한다며,

나를 찢고 깨고 찢고 깨고... 혹 봉오리 피우기도 전에 찬서리내리면 안될 일인데...

꽃이 되어 핀 슬픈 것들.

그 아름다움에 박수를 보내며,

모든 아름다움을 가진 꽃들에게 수고했다고 박수를 보내며, 한 없는 부러움의 박수를 보내며.

진정 아름다운 것들, 끝까지 슬펐을 것들...

지독히도 그래서 지독히도

 

그래 꽃이 아닌 것이 없다.

 

숫돌

 

복효근

 

숫돌을 생각한다

돌에게도 수컷이 있을까

그래, 수컷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알자면

숫돌에 무딘 칼을 문질러보랴

무딘 쇠붙이를 벼리는 데는 숫돌만한 것이 없으리

닳아서 누워버린 날을 세우려면

숫돌은 먼저 쇠에 제 몸을 맡기고

제 몸도 함께 닳아야 하는 것인데

명필이

먹에 닳아서 뚫린 벼루의 숫자로 제 생애를 헤아리듯이

숫돌은

제가 벼린 칼날이 몇인가, 혹은 그 날이 무엇을 베었는가

근심하며 고뇌하며

닳아서 야윈 뼈에 제 생애를 새기느니

통장의 잔고를 헤아리다가

허접한 가계에 주눅 든 내 남성이 한없이 수그러드는 때

생각한다

수컷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아~ 숫돌을 숫돌이라고 쓰는구나

난 숫돌을 숯돌이라고 쓰는 줄 알았는데, 그렇구나

 

닳아버린 칼에 날을 세우려면 제 몸도 함께 닳아야 하는 것인데

자신이 갈아야 할 칼날들이 줄을 서 있는데,

숫돌은 칼에 날이 서면 설수록 제 몸이 닳아져간다.

그렇구나.

수컷의 삶도 그렇구나.

그걸 알았던가?

시인은 수컷의 삶을 칼과 같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러나 칼의 날을 세워주곤 자신은 닳아 없어져야 하는 그런 삶으로 보았구나.

내가 날을 세워주어 칼로 쓰인 것이 몇 이며, 그 몇은 세상에 나가 무엇을 베고 다니나 근심하는

숫돌인 시인...

그는 진정 그 옛날의 제 몸을 닳아내기만 하면 되는 그런 숫돌은 아니라고 생각하나보다

현대는 숫돌에게 원하는 것이 너무 많아졌다.

숫돌 또한 자신이 칼이 되고 싶은 생각도 너무 강해졌다

자신이 칼이 되고 싶은 숫돌은 자신이 닳아없어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데,

누군가에게 몸을 부비고 싶을 것인데,

칼들은 자신에게 줄을 서있고

자신은 자신을 칼로 만들어 줄 누군가를 찾고

현대는 절대 내어주기를 싫어하는 것들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나보다.

난 숫돌이 되기 싫다.

칼이 되고 싶다.

나를 갈아줄 숫돌은 으악하고 소리지를 것 같다.

나를 그만 닳게 해 달라고....

나는 숫돌인 나도 칼이 되고 싶다고 소리 지를 것만 같다.

아무 것도 못하는 사람들의 바글거림.. 그래서 영웅은 없는 것일까?

 

숫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