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에 쓴 일기입니다.
일기를 공개? 비밀스러운 것이라기 보다 쫓아다녀야 할 저입니다.
2004년 10월 24일
참 오랜만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산행이 아니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경북 봉화면 우곡리 우곡성지 밤나무길신부님께 다녀왔습니다.
우곡성지는 태백산맥의 거의 끝즈음에 있는 문수산계곡 옆 카톨릭성지입니다.
저는 지난 겨울 거기서 보름 정도를 지낸 적이 있습니다.
오직 혼자서..
tv도 라디오도 없이 오직 혼자서...
신부님은 100미터 밖 사제관에 계시고,
미사시간이 되면 신부님과 저 딱 둘이서만 미사를 보았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저를 위한 강론을 하시고 저는 그 강론을 들었습니다.
신부님은 제 나이와 같이 한국생활을 하신 프랑스인 신부님이십니다.
올해 73세, 프랑스인신부님 그 분은 항상 바스크족이라고 하십니다.
굉장히 유쾌하신분입니다.
그 분을 10달만에 다시 뵈었습니다.
아무런 걸림없이 모든 걸 나눕니다. 그 분은 저를 보십니다.
저는 그동안의 제 마음과 제 생활과..모든 것을 이야기 합니다.
성당은 나가고 있지 않지만, 그걸 아시지만
신부님은 발비나 발비나 하면서 기다리십니다.
저는 발비나입니다.
그곳에서는 발비가 아니라 발비나로 온전히 끝까지 다 불리워집니다.
하룻밤을 그 아름다운 곳에서 보내고 왔습니다.
별을 보고 계곡의 물소리를 듣고 신부님의 웃음소리를 듣고
그리고 제가 살고 있는 인터넷세상을 신부님께 보여드리고 .....
신부님은
걱정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신부님께 다 잘 되어가고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신부님께서 신부님의 그 분께 절 부탁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발비나 그리고 발비...
한창 마음에 바람이 일때
갑자기 신부님이 생각났고 그리고 떠났습니다.
신부님께 전화를 해도 되지만, 10리길을 걸어서 가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가는거다.
이렇게 천천히 걸어가면, 신부님이 계신 성지는 나오는 거다.
더 빠르게 걷지도 말고 더 느리게 걷지도 말고
이렇게 걸으면 나온다. 그러면 나를 두 팔 벌려 맞으시는 분이 계시는거다.
참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빨간 사과들이 지천으로 깔려 저를 유혹했지만,
전 사과를 따지 않고 그냥 한 길로 걸었습니다.
그 이야기도 신부님께 했습니다. 웃으십니다....
저는 지난주 다시 온 몸이 지치도록 살 수 있을 만큼 충전을 시키고 왔습니다.
이제 내일 지리산으로 갑니다.
다시 걸어볼랍니다. 뚜벅뚜벅 그렇게 걸어서 정상이 나오고
그리고 햇빛 버스가 나오고 그리고 그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올 겁니다.
참 평화로운 계절입니다.
뚝 뚝 버려지는 계절. 평화롭습니다.
그 신부님께 가서 여름휴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정말 만나고 싶고, 가보고 싶은 그 곳으로 다시 가려구요.
그 곳은 아무 것도 없는 곳입니다.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나무가 있고, 계곡이 있고,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리고, 계곡 물소리가
들리고.
신부님이 놓으신 다리에 걸터 앉아 계곡을 보고 있으면,
그리고 다리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 책을 읽으면,,, 신선이 됩니다.
정말 쉬고 싶은 휴가를 그 곳에서 쉬려고 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쉬려고 합니다
신부님께 송어회를 사달라고 해야지...
무지 맛있는데, 꼭 신부님이 사주셔야 맛있더라구요..
지금 신부님이 무지 보고 싶네요.
신부님이 좋아하시는 포도주와 치즈(냄새가 무지 나는 것으로)를 챙겨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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