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는 아무것도 모른다
책이 되어 나왔다.
책 작업이 완전히 되고서야 알았다.
10권이 넘는 책에 먹동판이 찍히지 않았다.
먹동판은 큰 제목이고 작은 제목은 금판이다.
뭔가 이상한 책.
책등의 먹판도 , 표1의 먹판도 인쇄가 되지 않았다.
처음 모나리자를 보았을때, 멀쩡한데 뭔가 이상했던 느낌 딱 그것이었다.
제목이 없는 책표지 재미있다.
열권을 골라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한데 눈썹이 없는 것이다.
그 책을 어찌할까? 분명 내가 가지고 갈 것이다.
우리집은 패자부활전에 출전할 것들만 모여있는 곳이니까..
졸지에 먹판이 인쇄되지 않은 책은 패자가 되었다.
순식간에 패자들만 우글거리는 나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모든 것이 멀쩡한데 눈썹만 없다.
눈썹이 없어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것도 패자다.
대열에 끼지 못하는 것은 패자가 될 뿐이다.
그래서 누구나 도저히 갈 수 있는 길도 가기 싫어 두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간다.
사람들은 패자가 되기 싫어한다.
패자가 되면, 그리고 패자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가면,
다시 일어나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기계는 아무것도 모른다.
커버의 인쇄를 골라내지 못해서, 내지까지 모두 패자로 만들어 버렸다.
단순, 무식한 기계들.... 기계들이 무지 많다.
기계의 속성을 가진 사람도 무지 많다.
아무것도 모르는 기계와 기계의 속성을 가진 사람들.
그래서 먹판이 찍히지 않은 것도 모르는 그런 사람들.
남을 패자로 만들어버리고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다
파지가 아니라, 파본이 되어버린 책이 내 앞에 열권이나 쌓여있다.
먹판 제목이 찍히지 않은 책은 눈을 감고 있는 듯 하다.
이 세상에서는 눈을 뜨지 못하는 장님으로 살 것 이다.
그런데 기계는 모른다. 몰라서 그냥 지금도 돌아간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냥 돌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