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버니어 캘리퍼스

발비(發飛) 2005. 5. 17. 22:00

 

 

 

 

 

모르는 것을 아는 방법에는 뭐가 있을까?

 

읽어서 아는 것

배워서 아는 것

찾아서 아는 것

저절로 아는 것

들어서 아는 것

봐서 아는 것

계속 모르는 것....

 

제본소에서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본다.

 

정합기위에 인쇄지를 가지런히 올려놓는 것

정합기 위에 올려놓은 인쇄지를 눌러 작동시키는 것

파지정리법(난 개인적으로 이 일이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런데 시간은 제일 많이 걸린다)

만들어진 책 권수 조절해서 밴딩기에 올리는 것

밴딩기 끈 가는 것....

 

이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른 일은 나에겐 모두 어깨너머의 일이다..

어깨를 항상 오른쪽 왼쪽으로 돌리면서 살핀다.. 알려면, 또는 알아들으려면

 

 

오늘의 포착대상은 공장장님 손에 있는 바로 저 물건...

주머니에 넣고 다니시는데... 파이프담뱃대 크기만한 것을 항상 만지작거리신다.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그 이름이 버니어 캘리퍼스란다.

그렇게 말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궁금해서 찾아다녔더니 그것이 버니어 캘리퍼스란다.

 

오늘 공장장님이 그걸 쓰시는거다.

그래서 봤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다가가서 좀 더 가까이 봤다. 커피 한 잔 타가지고...

공장장님은 지난 번에 제본한 책을 한권 찾으신다.

미모조100을 사용해서 제본했던 책... 한웅큼을 잡으시더니 버니어 캘리퍼스로 집는다.

그리고 눈금을 본다.

거기에 눈금이 있었다. 일종의 자였던거다.

그리고 계산...

아트180을 사용해서 만들었던 도록을 갖고 오신다.

그리고 한 웅큼 잡더니, 또 재어서 계산...

어깨너머 본 것.

 

200-1.5.......3

50-1.4.....4.2

 

컥~

암호다... 하지만 해독가능

200면짜리 미모조100은 1.5센티 그러니까 400면은 3센티

50면짜리 아트180은 1.4센티 그러니까 150면은 4.2센티

그럼 7.2센티미터의 두께....

알게 된 것이 하나 생긴 셈이다.

 

책등의 두께를 미리 계산해야 표지를 만들 때 잘 맞는 표지를 만들수 있는 것이다.

이 책처럼 하드양장본일 경우는 두께가 잘 맞아야 똑 떨어지는 책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가지 더

표지에 쓰일 합지의 두께까지 더해야 한단다...

그럼 책등의 두께를 계산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버니어 캘리퍼스가 있으면 된다...

 

작은데 기특한 것이다.

 

아는 방법엔 여러가지가 있다

한가지 방법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

그렇다면 인간은 단세포동물이었을 것이다.

여러가지,,,

봐야하고, 생각해야하고 읽어야 하고... 그런 것들이 모두 합해져서 아는 것...

내가 알고 있는 일

인쇄지를 정합기에 들어올리는 일.

파지를 묶는 일...

그런 일들과 버니어 캘리퍼스를 쓰는 일...

그 정도의 차이인데도, 아는 것에 대한 농도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것의 농도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다를까?

오늘 저 버니어 캘리퍼스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의 덩치(?)는 결코 많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것들은 천차만별일것이라는 생각

그렇다면 농도의 문제일 것이라는 생각

걸쭉한 사람과

묽은 사람

컵에 담아두고 기울이면, 주루룩하고 흘러내릴 것 같은 내가 상상된다.

기울여도, 끈끈히 컵에 붙어있을 만큼의 농도를 가지고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갑자기 마음이 조용해졌다..

 

오늘도 어깨너머로 봐서 알아지는 것들에 대해 넘겨보지 말아야지...

파지 나르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