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나에게 온 새 식구...트리안 |

발비(發飛) 2005. 5. 16. 02:42
  

 

지난 주에 난 생명 하나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전철역앞의 꽃집이 문을 열어놓고 있었다.

24시 편의점을 제외하고는 모두 문을 닫고 있었는데,

아마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이라서 오래동안 문을 열어놓은 듯 싶었다.

막 들여놓으려는 주인아저씨.

그 발 아래... 가녀린 트리안이 눈에 띄었다.

 

언젠가 트리안을 키우다가 실패를 한 적이 있었다.

아주 가녀려서..

물만 주면 잘 큰다는데,

근데 못 키우고 말라 죽어버렸었다.

그 후로 트리안을 보면 왠지모를 열등감? 이것도 아니고...

미안함? 이것도 아니고

찝찝함? 차라리 이게 낫겠다. 그랬었다.

그게 트리안이 나의 식구가 된 이유다.

 

집에 데리고 오자, 난 얘가 마음에 안 들었다. 특히 옷이

난 오자 마자 자리도 마련해 주지 않고, 옷부터 갈아입히기 시작했다.

 

마포끈으로 화분을 탱탱하게 감기..

아마 40분은 걸렸을 것이다.

문제는 거기부터 시작되었다.

화분을 빙빙 돌리며, 마포끈을 감았더니. 화분은 빙빙 돌리며...

옷을 다 입히기는 했는데...

빙빙 돌리느라 트리안의 잎들이 내 손에 밀리기도 하고

잡히기도 하고.

트리안은 옷을 입고나자... 모두들 비실비실해졌다.

그리고 본 척도 하지 않고 멋진 옷에 어울리는 자리를 잡아주었다.

 

다음날

퇴근 후 ...

정말이지...

다시 악몽이 시작되는 건가?

트리안이 모두 말라있다.

이번에는 절대 안되는데....

혹시나 그러면서 물을 듬뿍 주었다. 혹시나 하면서....

 

또 다음날

퇴근 후... 살았다.

목욕탕에서 재를 데리고 나오질 못했다.

물 주는 것을 잊어버릴까봐.

그리고 물을 열심히 주었지.

 

오늘 데리고 나왔다.

좋은 자리보다는 아주 복잡한 책상위지만, 그래도 그 위에 두기로

걸리적거릴때마다 물을 주게...

이제 좀은 안심이다.

보다시피, 잎이 좀 싱싱해졌으니까....

 

이 집에서 나 이외의 유일한 생명체.. 그러니 식구다.

물을 나누어 마시는 식구.

기념촬영을 한 날이다.

 

내일은 잎이 몇 개는 더 올라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