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양]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만도 하다
감자양의 입장에서 보면 그럴만도 하다.
강아지가 낑낑대는 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하면, 낑낑!이지.
감장양이 내는 낑낑은 낑낑이 아니라, 으으응, 정도가 된다.
마치 다섯살쯤 된 아이가 택도 없다는 엄마를 향해 소심하게 조르는 소리, 감자양이 요즘 그 소리를 자주 낸다.
요즘 낙동강변 산책을 갈 때는 차로 간다. 추워서.
강변이 보이기 시작하는 내리막길 즈음부터 바로 그 소리 으으응을 시작해 강변으로 들어서면 그 소리는 커진다.
언젠가부터 그랬다.
아침으로 먹고 있는 오트밀우유죽을 먹을 때면 옆에 앉아 하염없이 나를 보다가, 잠깐이라도 눈을 마주치면
으으응, 하면 발을 동동 구른다. 그리고 납작 엎드린다.
며칠 전 노령견인 흑미가 너무 아무 것도 안 먹어서 줬더니 먹길래, 그걸 보고 있는 감자양이 측은해서 한 스푼 준 그 때부터 그랬다.
도서관에 오려고 가방을 챙기면 별 소리 없이 발끝만 쫓아다니다가, 외투를 입으면
바로 으으응, 하며 안절부절한다. 정작 현관에서 신발을 신을 즈음이면 아무 소리 없이 가는 나를 쳐다볼 뿐이면서.
나는 다녀올게 하고 무심히 말한다.
깊은 밤이나 새벽에 흑미가 낑낑거리거나 소리를 지르면 감자양은 내 곁으로 와 껑하고 한 번 짖고는 으으응, 하고 안절부절한다.
나는 그 소리에 일어나 흑미에게 가 보기도 하고, 엄마가 흑미를 달래는 소리가 들리면 그냥 자기도 하고,
감자양은 몇 번 더 으으응, 하고는 곁에 누워서 잔다.
나는 이런 것들을 솔루션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소리를 내지 않은 강아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늘 함께 하고, 늘 원하는 것들 주던가
아니면,
함께 해도 따로 있어도 상관없는 아이가 되도록, 원하는 것이 없는 무심한 강아지가 되도록 하던가
난 그냥 이대로 아침이면 최대한 늦게 일어나 청소를 하고, 낙동강 산책을 같이 하고, 점심을 먹고, 도서관에 오고, 해가 지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나 집에 들어가 감자양과 잠깐 논다. 그리고 저녁 세수를 하고, 밤에 하는 일들을 루틴대로 한다. 그 곁에서 감자양은 나를 쳐다보기도 하고, 내가 보이는 곳에서 눈을 붙이기도 한다.
감자양의 입장에서 보면, 요즘 내기 시작한 으으응이라는 소리는 그럴만도 하다.
그 정도쯤은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나는 그 소리를 내지 않도록 하려면 내가 뭘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을 꽤나 많이 하는 것 같다.
오늘 오전 낙동강 산책때 우리 둘이 처음 해 본 것이 있었다.
강이 잘 보이는 곳에 놓인 벤치에 나란히 앉아 둘 다 잠깐 졸았다.
간만에 따뜻한 햇볕 탓이었겠지.
그곳은 감자양이랑 내가 자주 앉는 곳이고, 간식을 주는 곳이기도 했는데,
오늘도 감자양은 간식을 먹었고, 다른 날처럼 벤치에서 내려가지 않고 가만히 엎드리더니 눈을 감았다.
나도 따라 눈을 감았다. 둘이 햇빛 아래서 잠깐 졸았다.
햇빛이 눈꺼풀 밖에서 반짝였고, 새가 재잘거렸고, 마른 잎들이 바람에 바스락거렸다. 몇 몇 지나가는 사람들이 튼 노랫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같은 것을 듣고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장과 감자양의 입장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며, 감자양의 입장에서는 으으응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은 그럴만 하다는 거다.
나라도 그럴 듯 하다.
나도 낑낑거리진 못해도 으으응 하는 소리는 낼 것 같다.
누구라도 그럴 것 같다. 그 입장이 되면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