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방문

발비(發飛) 2018. 3. 16. 11:20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후배들이 어제는 즐거웠다며 메신저를 보내왔다. 

나도 즐거웠다고, 어제는 잠을 잘 잤다고, 그러니 또 놀러오라고 했다. 


어제 회사 후배들이 집에 놀러왔었다. 


6시 칼퇴근을 하고, 셋이서 택시를 타고, 집 근처로 와 

혼밥을 하던 단골집에서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함께 저녁을 먹었다. 맛있다고 극찬해줬다. 

단골 편의점에서 늘 사던 맥주 한 팩과 과자 몇 봉을 사서 집으로 왔다. 


회사 책상은 지저분한데, 집은 왜 이렇게 깨끗하냐며 의외란다. 


맥주를 마시며, 

집 이야기, 

회사 이야기, 

여행 이야기,

그들의 남편 혹은 남자친구 이야기. 


10년 정도 나이 차이가 나는 후배라

그들은 현재 이야기를 하고, 나는 지나왔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같은 의미의 시간이라 할지라도 지나 간 시간은 분명 현재의 시간과 다르니까, 

그때는 분명 실존이었지만, 그 실존은 이미 끝나버린 시간. 그들에겐 어쩌면 무의미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말을 자제했다. 

아주 잠깐만에 지난 시간의 이야기가 입 밖으로 새나온다. 

나도 모르게 지난 시간이 현재처럼 훅 다가온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더는 안돼 하고 다시 한번 자제한다. 


여행이야기가 좋았다. 

기억 저편에 있었지만 떠오르지는 않았던 시간이 그들 때문에 소환된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나는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낸 사람이었다. 

운명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그걸 자꾸 잊어버리지 말자고 짧게 다짐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하오호 웃었다.  

그들의 방문이 즐거웠다. 


열시 쯤 후배들은 돌아가고, 나는 좀 이르게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 


잠을 잔 줄도 모르고 아침이 되었다. 

깨지 않고 없었던 시간처럼 잔 모양이다. 

일어나기 이른 시간이었지만, 머리가 너무 맑아 더 누워 있을 필요가 없었다. 

스트레칭을 하는데 몸이 가볍다. 


이 개운한 느낌은, 


몇 달 전 친구들이 우리집에서 와 하루 종일 있으면서 수다를 떤 적이 있었다. 

대부분은 돌아가신 아버지에서 비롯된 이야기였는데, 

그 수다를 떨었던 날 밤, 나는 무척이나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고, 

다음 날 아침 그 개운함에 놀라웠다. 


같은 느낌이었다. 


한 번의 경험이 없었다면, 알아채지 못했겠지만 오늘 아침은 알아챌 수 있었다. 

내 안에 가득한 말 때문에 나는 잠을 잘 수 없었던 것일지도, 

집이 너무 고요해서 잠을 잘 수 없었던 것일지도, 


친구들과 후배들이 집을 방문하고, 

그들이 남긴 기운이 나를 평화롭게 만들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나무로 지은 한옥 같은 사람인가보다. 

누군가 만져주지 않으면 금방 삭아내리는, 

사람들의 손길이 닿으면 금방 윤기와 생기를 되찾는, 

나는 나무로 지은 집인가보다. 


집을 열어두자. 

날마다 현관문을 열어두고 깊은 잠을 자자. 

이토록 맑고 개운한 아침이 내일의 아침, 모레의 아침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