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訃告] 다른 종류의 죽음
피로에 풀리지 않던 몸이 사우나에 가서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면 마사지를 받은 것처럼 몸이 개운해진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영 말이 아니었다.
이사를 하고나서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사우나에 자주 간다.
-잠시 딴 소리-
흔히 말하는 체질이 바뀐 것인지 나도 모르게 기호가 많이 바꼈다.
빵이나 면을 거의 먹지 않았는데,
글루텐 알러지라고 해서 밀가루 음식을 먹고 나면 마취된 것처럼 잠이 쏟아지는데다가
먹고 싶지도 않아서 거의 이십년 가까이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먹지 않았다.
그런데 근래 비빔국수를 비롯해서 자장면, 심지어 짬뽕도 먹었다.
빵도 먹었다.
그런데도 예전처럼 부대끼거나 잠이 쏟아지지도 않았다.
사우나도 마찬가지다.
전에는 사우나에 가면 심장이 뛰어서 탕에는 못 들어갈 뿐더러 버티는 것이 힘들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지 않을 뿐더러 가고 싶은 생각이 불쑥 올라온다.
체질이 바뀔 수도 있는지, 몸이 어떻게 바뀐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상한 일다.
나는 변했다.
오늘은 늘 해 주시던 분이 아니라 처음 보는 분이셨는데,
이리저리 몸을 밀다가,
나랑 몸을 좀 나눴으면 좋겠네,
뼈다귀 밖에 없구만,
나는 병원가면 맨날 살 빼라고 하는데 안 빠져,그러신다.
최근 살이 조금 더 빠졌다.
내가 생각해도 삐적 말랐다.
우리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동생과 조카가 사우나에 모시고 가 삐적 마른 몸을 씻어드렸다.
우리 오빠는 죽기 전에 아버지와 동생이 사우나에 데리고 가 삐적 마른 몸을 몸을 씻어줬다.
나는 늘 입구까지만 같이 가서 엄마와 함께 여탕으로 갔었다.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죽음이 좋았는데...,
삐쩍 마른 아버지가 보고 싶고, 더 삐쩍 말랐던 오빠가 보고 싶었다.
다섯 가족 중에 둘이나 삐적 말라 하늘나라로 갔다.
이 정도 나이면, 특별할 것도 없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스물 넷 다섯일 때 대학을 갓 졸업한 삐쩍 마른 오빠가 하늘 나라로 간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동정했다.
마음이 나쁜 사람은, 자식이 요절한 재주가 없는 집이라고 했다.
지금 나보다 어린 나이에 자식 잃은 부모가 된 우리 아버지와 엄마 모습이 생각난다.
이번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좋았다.
아버지의 죽음은 오빠의 죽음과 달라서좋았다.
아버지는 친구들의 배웅을 받을 수 있지만,
서럽지 않을 연세에 천진한 아이같은 표정으로 돌아가신 것도 좋았고,
문상객들과 서로 민망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라서 좋았고,
무엇보다 가슴을 치는 아버지의 부모와 형제가 없는 것도 좋았다.
그들 모두는 아버지보다 하늘나라에서 막내아들과 막내동생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이 좋았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우리 가족에게 늘 있었던 죽음의 트라우마를 극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 모든 죽음은 늘 오빠의 아픈 죽음과 연결되어, 그 죽음을 충분히 애도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사는 것과 죽는 것의 경계가 아주 부드럽게 연결되는 것을 느낀다.
아버지의 비석에 써드린 글
그 길에는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나를 반기는 이 있네.
나는 이제 죽음이 따사롭고, 반겨 기다리는 이들이 있으니, 죽음을 두려워할 것 없이 삶을 살면 된다.
세신사가 어느 분에게 탕에서 몸을 불리고 계세요, 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 분이 탕 속으로 들어가자, 저 분은 말씀을 못하는데, 내가 하는 말을 다 알아들어요. 그런다.
또, 저런 분을 보면 잊고 있다가 건강한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정말 다행이라고 그런다.
눈물이 쏙 들어갔다.
또 한동안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아버지를 깜빡 잊고 살겠지.
크리스마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