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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葉-송년회

발비(發飛) 2017. 12. 21. 11:14

7葉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든 모임의 이름이다. 

왜 7葉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는 7명의 친구 이름을 나란히 책갈피에 적고는 코팅을 해서 나눠가졌다. 

그것이 7葉이라는 모임의 유일한 증거이다. 

우리 중에 단 한 명만이 그 책갈피를 가지고 있다. 


일곱 명 중 세 명과 함께 송년모임을 했다. 


키가 엄청 큰 미라는 선생님이 되었고 의사와 결혼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이고, 

눈이 큰 나영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수도원을 몇 번 쫓겨나고도 결국 수녀님이 되었고,

뜬금없이 문창과에 들어간 영미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연락이 끊겼다. 


어제 한 턱을 낸 양미는 큰 출판사의 상무로 승진을 하였고, 

애를 셋 낳아서 훌륭하게 키운 향년은 그 와중에도 결손 가정 방과 후 교육 돌보미를 하고 있고,

늘 우리를 가장 잘 챙기는 혜영이는 재취업에 성공한 직장이 힘든지 살이 쏙 빠졌다. 

얼마 전 아버지를 잃었지만 여전히 단순한 삶을 이어가고 나도 있다. 


우리는 늘 만나던 여의도 ifc몰 계절밥상에서 오는대로 먹고, 나중에 온 사람은 나중에 온 사람대로 먹고,

수다를 떨었다. 

고등학교는 같지만 초등학교는 모두 다른데, 

초등학교 모임들 이야기를 한참 했다. 


시간이 지났다. 

오직 어린 시절의 친구라고 모두가 좋은 것은 아니라며, 각각 겪은 초등 동창의 실망한 지점을 얘기했다. 

이 친구들은 심하게 쿨하고, 건조한 편인데, 

남들이 하면 엄청난 뒷담화였을 수도 있을 이야기들이 

친구들의 담백한 어투 때문에 삶에 대한 관조처럼 들리는 것이 재미있었다. 


결론은, 

'우리는 너무 연락을 안 하고 살지만, 그런 것이 좋아.' 였다. 


그랬다. 

상무가 된 양미의 집과 회사는 나의 집과 십분 정도 밖에 안되지만 한 번도 따로 본 적이 없다. 


7살에 학교 들어간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친구들은 나를 애 대하듯 하였다. 

그때도 지금도 그것이 하나도 안 이상했다.

한 번 설정된 관계는 몇십 년이 지나도 여전하다. 


이사하면서 고생한 이야기를 했더니, 

말띠 언니들 뒀다 뭐하냐며, 자기들을 써먹으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곱 개의 잎 중 네 개의 잎은 잘 살고 있다. 

출근하자마자, 카톡에는 어제의 만남이 즐거웠음과 서로 잘 살고 있어서 좋다는 격려의 말이 오갔다. 

마치 오랫동안 안 볼 사람처럼 말이다. 

우리는 또 한참을 각자의 자리에서 살다가, 

너무 오래지는 않은 어느 날, 아카시아 잎이 한 가지에 달려 하나가 되듯 하나가 될 것이다. 


각각이었다가 하나이었다가...,


7葉 친구들이 늘 같은 것은 각각이기도 했다가 하나이기도 했다가 하는 것처럼

그런 만남이 만족스러웠던 것처럼,


 

만약 어떤 이를 만나 그와 지속적인 관계를 원한다면, 

그렇게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