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訃告] 몸과 병
증상과 통증은 이제 미병이 끝나고 우리 몸에 병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대부분의 장기와 기관들은 통증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위통이 시작된 후에야 위가 여기쯤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고, 아픈 곳은 허리인데 손발이 먼저 저려올 때 온몸의 신경이 연결되어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에서도 다시 사람의 인연을 생각한다. 관계가 원만할 때는 내가 그 사람을 얼마나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한 사람이 부족하면 남은 한 사람이 채우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계가 끝나고 나면 그간 서로 나누었던 마음의 크기와 온도 같은 것을 가늠해보게 된다. 이때 우리는 서운함이나 후회 같은 감정을 앓는다. 특히 서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연의 끝을 맞이한 것이라면 그때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될 만큼 커다란 통증을 경험하게 된다.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중에서
일상을 살다가 지난 주말 엄마만 계신 안동에 다녀왔다.
늦은 밤 도착한 집에는 아버지의 반려견이자 치료견이었던 '흑미'(까만 치와와)와 엄마만 있다.
-잠시 딴 소리-
내가 안동집에 가면 늘 하는 일, 해야하는 일은 흑미를 목욕시키는 일이다.
흑미에게 나는 가끔 나타나 자신이 싫어하는 목욕을 시키고 사라지는 어떤 인간일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늘 한 몸처럼 붙어있는 아버지에게서 자신을 떼어놓는 어떤 인간일 것이다.
너무 아버지에게 붙어있어 나는 늘 흑미에게 ' 저리로 가, 우리 아빠야.' 하고 놀렸더랬다.
이런 저런 이유로 흑미는 내가 나타나면 소파 밑으로 도망가서, 하룻밤이던. 사흘밤이던 내가 갈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다.
눈길 한 번 안 준다.
생후 2개월부터 10년간 한 몸처럼 붙어있던 아버지의 부재를 흑미는 어떻게 생각할까?
남은 우리 가족은 흑미에게 절로 위로를 하게 된다.
나도 그렇다.
다른 때 같으면, 흑미는 나를 보자말자 소파로 들어가야 하는데,
무슨 일인지, 내가 안자 가만히 안겨있다.
엄마와 나는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흑미 마음에도 지각 변동이 생겼나보다 하며, 그 마음도 짠했다.
5분, 10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흑미가 깽~ 하면서 내 품에서 나와 소파 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오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막 웃었다.
이제 생각이 났다 보다 하고,
다음날 나는 흑미의 식사 시간을 틈 타 또 목욕을 시켰고,
언제나처럼 얌전히 목욕은 잘 했지만, 소파에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전에는 욕을 마구 해줬는데,
이번에는 소파 밑으로 얼굴을 내밀고 작별인사를 했다.
그때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후회될 만큼 커다란 통증을 경험하게 된다.
흑미는..., 어떨까?
주말동안 흑미와 엄마, 나. 셋이 있었다.
안동 집은 아버지가 안 계시는 것만으로 새로운 일상인 듯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 묵주기도를 했고,
세수를 하고, 8시 30분이면 밥을 먹자고 했다.
밥 먹기 전에 늘 먹던 주스도 똑같았다.
달라진 것이라면, 일어나지 않으려고 온갖 핑계를 대며 어리광을 부릴 아버지가 안 계셔서 엄마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어났고,
엄마가 갈아놓은 주스는 금방 밥 먹어야 하는데 이걸 왜 주냐며 투털대던 것도 같은 이유로 별 말없이 꿀떡꿀떡 삼켰다.
아버지와 늘 같이 가던 단골 갈비집에 가서 엄마랑 점심을 먹었다.
갈비집 사장님은 어찌어찌 알고 문상을 왔었다. 그 사장님은 끝내 그날 계산을 못하게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엄마는 자신을 위해서 한 달에 한번씩, 꼭 내려와서 같이 고기를 먹자고 했다.
마트에 가서,
한 번 밥을 해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한 개씩 해동시켜 먹을 수 있는 밥 냉동 전용 용기를 샀고.
아침마다 갈아 마시는 믹서기도 작은 것으로 샀고,
밤에 침대 곁에 두고 따듯한 물을 마실 수 있는 텀블러도 샀다. 모두 혼자 살기 시작한 엄마 것이었다.
내 것으로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시장 노점에서 파는 들깨강정과 깨강정을 사서, 오후 내내 집어 먹었다.
저녁엔 인터넷에서 무로 만든 전이 맛있어 보였다고, 내가 엄마에게 무전을 만들어 주겠다는 전날 밤 약속을 했고,
6시가 저녁 먹는 시간인, 엄마는 6시가 되기도 전에 무전을 해 달라고 했다.
만약 아버지가 계셨다면, 무슨 6시에 저녁을 먹냐며, 퇴근도 안 한 시간이라며, 그렇게 편하게 살아서 좋겠다며,
온갖 괜한 말들을 꺼내며, 말거리를 삼았을테지만,
나는 아무 말없이 무전을 두 장 부쳤고, 저녁으로 무전을 한 장씩 먹은 셈이다.
엄마가 조금 더 먹은 것 같은데, 그 정도의 괜한 말을 던진 저녁을 먹었다.
다음날 오전 서울로 올라올 때,
엄마는 평소와 달리 "너 이번에 돈 많이 썼다'"며 평소에 주시던 차비보다 더 많은 돈을 챙겨주신다.
나는 평소 주시던 차비는 받고, 나머지는 엄마에게 도로 주었다.
"엄마도 돈 벌었고, 나도 돈 번거지?"
엄마는 아무 말없이 남은 돈을 받고, 그러네, 그랬다.
똑같은 일상이었다.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데, 안동집에 갔다 오는 것 같지 않았다.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꽁알대는 것을 늘 아양으로 받으셨던,
그래서 병원에서조차 아버지 곁에서 습관처럼 꽁알대던 나는, 이번에는 한 번도 꽁알대지 않고 서울로 돌아왔다.
마음은 의외의 곳에서 흔들렸고,
나와 아버지의 일상이 기억 속에서 들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