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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추천사(鞦韆詞)
발비(發飛)
2016. 11. 21. 10:40
추천사(鞦韆詞)
-춘향의 말 1
서정주
향단(香丹)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밀 듯이,
향단아.
이 다수굿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데미로부터,
자잘한 나비삿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밀 듯이, 향단아.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 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 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 다오
향단아.
춘향이가 갈 수 없듯 나도 갈 수 없다. 저 먼데 하얀 구름이 아름답게 떠 있는 파란 하늘이 선명히 보여도, 하얀 파도를 높이 몰고 있는 파란 바다의 소리가 선명히 들려도 그곳으로 갈 수 없다. 너는 갈 수 없는 그 곳에 있다. 파란 하늘 흰구름 사이에 너가 있고, 파란 바다 하얀 파도 사이에 너가 있다.
나도 향단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게 향단이가 있다면 나도 춘향이처럼 그네를 타고 밀어라, 더 밀어라 할 것이다. 향단이가 힘차게 그네를 밀어준다면, 나는 온 힘을 모아 두 다리를 구르고, 그넷줄을 잡은 두 팔을 휘저어, 마침내 내가 그네를 매단 나뭇가지보다 더 높이 올라가게 되면 너와 눈을 맞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넷줄을 놓고 날아가리라.
내게 향단이가 있다면, 멀리 그곳에서 웃고 있는 너에게 날아갈 것이다. 너가 가둬놓고 떠나버린 이곳에서 하늘로 바다로 너 있는 그곳으로 날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