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라! 거품
주말에 사진 찍으러? 아니 찍히려 창경궁을 갔다.
비가 온다더니, 비가 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친구는 거대한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지고 출동, 나와 또 다른 친구는 피사체가 되었다.
우리는 작정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찍고 찍히는 그 자체가 멋진 추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기억의 힘. 그것으로 꽤 오래 우려먹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무게 없는 기억이 어느 때 우리를 가벼이 웃게 할 것이고, 몇 시간쯤은 충분히 행복하게 보낼 것이다.
창경궁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또 본다.
친구랑 마주한 얼굴이 좋고,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도 좋고 그런데...,
사진 한 장을 골라야 하는데, 고를 수가 없었다.
사진이 이쁘게 나오지 않았다는 친구에게 "너는 니가 천하절색인 줄 아냐?" 하고 핀잔을 주었는데, 반사!
찍을 때만 해도, 이건 잘 웃었네, 이건 몸매가 이쁘게 나왔네, 그랬던 것이 모두 거품이었다.
사진 속의 나는 필요한 것 이외의 것들이 묻어 있는 거품이었다.
무엇이 거품이냐고 물으신다면, 내 얼굴과 내 몸과 그것을 관통하고 있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쓸데없이 보낸 시간이라고 뜬금없이 말하고 싶다.
쓸데없는 시간! 이라고 또박또박 말하고 싶다.
특히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에서 아주 공평하게 우린 달라졌다.
시간과 시간 사이 덧대어진 것. 쓸데없는 시간!
생물학자인 최재천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자연에서 거품은 공존과 협력의 질서를 만들어 낸 것은 너무나 정상적인 기본 현상이다.
어마한 숫자의 씨앗이 만들어지고, 그 중에 살아남은 것들이 유지되고 발전한다.
굉장한 낭비를 통해, 가장 훌륭한 우월한 유전자가, 자연선택설이 된다.
자연은 거품이 기본이다.
자연에서 성공한 시스템이 인간세상에 적용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사회 사이즈에 맞게 수요 공급의 정량을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라고들 한다.
자연은 몇 백배의 배수를 생산하고, 소량이 쓰이고, 그 이상의 것들은 거대한 거품으로 넘쳐 흐른다.
거품은 진화의 기본이며, 낭비적 선택이다.
자연에서의 거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그것을 보고 사회에 적용한다면 소리없는 자연과 같이 따뜻한 공존이 될 것이다.
이것은 경제학논리의 반대해석이다.
사회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불안하고,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인식, 불안하다.
거대한 망원렌즈를 관통한 내 모습은 쓸데없는 것들 때문에 불안정했다.
거품을 인정하지 않은 지금의 사회에 잘 길들여진 나는 거품으로 소리없이 땅속으로 스미거나, 넘쳐흘러 사라질까봐 두려운 것이다.
거품. 거품. 나는 거품일 수 있다. 한없이 가벼운 거품. 알맹이 없이 얇은 표면이 몸의 전부인, 부피만 있는 거품.
나는 이 얇은 거품을 몸 삼아, 거품인 나를 견딜 수 있을 것인가?
거품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흔적없이 허공에 점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가벼이!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필요하지 않다. 부피 밖으로 쓸데없는 시간의 무게를 던져야 한다.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거품이 진화의 핵심을 받쳐준 잉여였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쓸데없이 되어 버린 시간을 아까워 말아야 한다. 한없이 가벼이.
태풍이 곧 비껴 간다고 하니,
햇살이 딱 좋은, 참 좋은 계절에 창경궁을 한 번 더 가자.
10월이 가기 전에 또 한 번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