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가짜 그리고 봉우리
진짜, 가짜 그리고 봉우리
참 열정적으로 산다. 사람들은 내게 얘기한다.
그럼 그런 척 하지. 그러다 간혹 반문도 한다.
대체 뭘 보고 그러는데?
너의 눈은 반짝이고, 너의 말은 빠르고, 너는 언제나 손을 꽉 쥐고 있지.
동의합니다! 나도 그런 사람을 보면 열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번을 그렇게 생각하다가, 계속 그런 모습을 하다가, 죄를 생각한다.
진짜 이면서 가짜.
진실 혹은 거짓.
내 열정의 처음은 언제나 진실이다. 하지만 십분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가짜가 된다.
열정이라는 진실은 처음 시작한 그곳에 있는데, 나는 이미 그곳을 떠났다. 멀찍이 떨어져있다.
열정은 저 멀리에 둔 채 차마 감지 못한 눈을 뜨고, 가속이 붙어 멈추지 못한 말을 하고, 펴지 못한 손을 잡고 있다.
그래서, 내 책상 위에는 어제 그제 미뤄둔 일들로 매일 쌓여간다.
나는 반성한다.
나의 열정은 이미 식어버린 차가 되어 버릴 수도 먹을 수도 없는 처지곤란의 어떤 것이라,
어느 날은 맛을 무시한 채 단순에 마셔버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귀찮아 양변기에 찻잎과 함께 버리고 물을 내린다.
나는 식기 전에 마시지 못한 수많은 나의 열정과 열정의 찌꺼기에 대해 반성한다.
이미 지난 것에 대해 여전히 그런척 말간 얼굴로 시치미 뗀 것을 반성한다.
오늘은 종일 하지도 않은 일을 붙들고는 가지 못할 여행을 꿈꾼다.
이 밤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책상에 앉아있다.
아주 오랜만에 전인권의 봉우리를 듣는다. 고백의 기도를 외듯이 그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진짜, 진실에 대해 생각한다.
나와 관계된 모든 과거는 현재 상태로 보면 부정과 부재이다.
그곳에 있었던 나는 현재의 내가 아니며, 현재의 나인 것처럼 보인다면 나는 오랫동안 거짓에 조련되어 있기에 당신들을 속인 것이다.
아주 오래되어 비밀스런 공간이 되어버린 이 곳에서 진실을 고백한다.
오래건 오래되지 않았건 지난 것들은 이미 내가 아니다.
봉우리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텐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 볼 수 있을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