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내는 날
아마 세월호때 부터 일 것이다.
어른의 자격이라는 말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건 세월호 즈음부터 내가 속한 회사가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가 흔들리면,
개인이 흔들리고,
속이 울렁거리고,
그렇더라도 어른이라면, 어른이라서 달라야 하는 것이 있다.
세월호에서도, 회사에서도.
나는 어른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에 대해서 꽤 오랜 시간 천착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 내가 스스로 어른이라는 것을 부정 혹은 의심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런지 모른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을 의심해 보는 것, 나쁘지 않다.
어제 오늘 마음이 좀 평화로워졌다.
나는 선택을 했고, 분명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스트레스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바뀔테고, 환경이 바뀔테고, 교통수단이 바뀔테지.
아니면 혼자가 되거나... 이 상황은 별로 달갑지 않으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테지.
그 변화 속에 나는 자리를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하겠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겁이 나지 않는다.
왠지 그냥 이렇게 가면 될 것 같다.
동생이랑 전화를 하다가...
걱정하는 동생에게,
"이상하게 괜찮아. 별 느낌이 없이 그냥 일상 같아." 그랬더니
동생이 엄청난 소리를 한다.
"칼 밑에 오래 있어서 그래."
그게 뭔 소리냐고 했더니,
단두대... 칼 밑에 목을 내놓고 오래 있은 사람은 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거라고 했다.
과연 그런 것 같다.
칼을 스스로 내여야 하는 경우라도 단두대 칼 아래 오래 오래 있으면 칼이 칼이 아니라 일상이 되어,
그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겠지. 분명 나의 목을 칼이 내리친 것인데, 그게 오래도록 그렇게 있어와서
자연스러운 일이 되겠지.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다. 이상한 것이 있다.
난 스스로 칼을 내렸는데...
근데 나는 죽지 않았다.
목이 댕강 떨어져 바닥에 뒹구는 것이 보이는 데도 나는 죽지 않았다.
... 도마뱀의 꼬리같은 머리가 있어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본다.
아마 처음 단두대의 칼 아래 머리를 놓을즈음 생겼을 목의 상처에서
어느새 머리 하나가 생기고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마치 도마뱀의 꼬리가 짤리면 또 다른 꼬리가 생기듯이 말이다.
상처가 나면 새로운 꼬리가 생기는 도마뱀처럼 나의 목이 그랬던 것이다.
분명 목이 잘렸는데, 내가 있다.
조금 다른 내가
조금 변한 내가
조금 나은 내가
어쩌면 어른이라는 것은 그렇게 그렇게 자꾸만 새로운 목을 만들어가며
어떤 칼이 와도 두렵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동요하지 않고 다음을 잘 만들어내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목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어
누군가를 위해 목을 내어놓더라도 그것이 상실이 아니라 다른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나는 다른 목이 있어 하는 믿음을 가지는 것.
뭐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이런 토는 달고 싶다.
목을 내놓을 만한 곳에, 일에 목을 내놓자.
발 밑으로 떨어진 나의 목을 확인하게 될 것이 뻔한데...
나의 댕강 잘린 머리가 떨어진 곳이 시궁창이면 안되니 말이다..
꽃밭이고, 논밭이고, 천상처럼 아름다운 곳이면 떨어진 내 얼굴이 웃을 터이니 말이다.
-사표-
놀라운 일이다.
내가.
살아있다.
그 커다란 비밀을, 단두대에 목을 잘려보고야 알았다.
도마뱀의 잘린 꼬리에서 새로운 꼬리가 나듯
목 잘린 자리에 눈코입을 가진 새 머리가 생긴다는 비밀을,
새 순이 올라오듯 새로 돋아난 머리가 가볍다.
어서 내리쳐라, 그 함성에 떨었다.
굵고 질긴 줄을 잡고 놓지 못해, 떨었다.
소리치던 군중들도 놀라, 벌건 얼굴로 쳐다본다.
시든 동백꽃같이 검붉은 색 잘린 얼굴이 발아래 뒹군다.
나는 피식, 썩은 미소를 짓는다.
죽은 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춘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