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송경동] 주름
발비(發飛)
2011. 12. 21. 14:42
주름
마흔 넘다보니 나도 참 많은 주름이 졌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이 고여 있는
골도 있다 왜 그랬을까?
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첩첩한 고랑도 있다
여름 볕처럼 쨍쨍한 삶을 살아보고 싶었지만
생은 수많은 슬픔과 아픔들이 접히는
주름산과 같은 것이기도 했다 주름의 수만큼
나는 패배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두려움도 많았고
주름이 늘어버린 만큼 알아서 접은 그리움도 많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주름들이
내 삶의 나이테였다 하나하나의 굴곡이
때론 나를 키우는 굳건한 성장통, 더 넓게
나를 밀어가는 물결무늬들이었다 주름이
참 곱다는 말뜻을 조금은 알 듯도 하다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수많은 아픔의 고랑과 슬픔의 이랑들을 모아
어떤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일 거라고
혼자 생각해보는 것이다
살았던, 이전의 흔적.
살아가야 할, 이후의 시간.
살아가야 할 이후의 시간을 위해, 이전의 흔적들이 낱낱이 파헤쳐지는... 현재.
살아가야 할 이후의 시간을 위해, 파헤쳐진 흔적들의 의미를 되짚는 시간.
살아가야 할 시간은...
지금을 포함한 以後.
결국 살아가야할 시간은 과거의 시간.
주머니 속에 든 모든 자(尺)들을 꺼내서 허공에 던진다.
날아간 자들이 오늘 아침 뜬 해의 도움을 받아
눈금 그림자를 단 날선 빛을 내며, 허공을 가로 자른다.
흐르는 시간의 허리를 자른다.
이전과 이후로 잘린 허공.
지금 내 하늘은 텅 빈 허공, 진공.
진공 속에 무중력으로 떠 있는 물체.
나는 살았던, 살아가야 할 물체.
송경동 시인은 살아가야 할 시간, 살았던 시간 이 모두를 합한 '산다는 것'을 이렇게 말한다.
산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수많은 아픔의 고랑과 슬픔의 이랑들을 모아
어떤 사랑과 지혜의 밭을 일구는 것일 거라고
혼자 생각해보는 것이다.
혼자 생각해보는 것이라고...말을 맺는
그의 답이 오늘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