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것에 좀 더 간절해지기
한 달 사이 세 번의 길고 짧은 여행을 했다.
하나는 이미 올린대로 티베트여행이었다.
그것은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
어린 달라이라마가 포탈라궁에서 망원경으로 라싸를 내려다보면서 한 집 한 집에게 축원을 보내는 장면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파도가 높이 치는 그렇지만 작은 바다. 동해가 보고 싶었다.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 친구와 함께 국도로 가는 강원도 여행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천천히 동해를 향했다.
가는 길에 수타사에 잠시 머물렀으며, 미시령 옛길, 그 높고 꼬불한 고개를 넘어 속초 바다로 가 높이 치는 파도를 보았다.
돌아오는 길, 또 보고 싶은 곳, 내게는 참 좋은 곳인 오대산 월정사에도 머물렀으며,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올라가는 비포장길을 쿵광거리며 달렸다.
그 길은 내가 꼽는 아름다운 길 중의 하나이다.
긴 운전, 새벽에 도착해서 딱 하루를 죽어있었다.
그리고 여행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간절함이 함께 떠올랐다.
이 두 여행은 나에게 간절함을 이루어가는 여행이었다.
안철수원장과 박원순후보가 한 말이다.
고통은 견디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를 아는 것이라고....
일요일, 그 생각을 한 그 순간 가장 간절한 것을 생각했다.
그것은 서울시장이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사람이 서울시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어떤 새로운 시작의 물꼬가 되기를 바랬다.
움직이자! 하는 마음으로 남산을 올랐다.
그리고 발파라이소에 있는 네루다의 5층짜리 좁고 높은 집으로 보이던 함석지붕만이 가득했던 항구의 집들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남산으로 올라가 네루다가 그랬듯, 달라이라마가 그랬듯, 나는 뭣도 아니지만, 내 집도 있는 서울시내를 향해 축원을 했다.
다 잘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남산을 넘어 민주당 서울시장 경선발표를 하는 장충체육관으로 갔다.
떠들썩했고, 사람들은 각자가 원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연호했다.
나도 내가 원하는 후보의 이름을 외쳤다.
그리고 당선이 발표되었다.
간절한 마음은 마치 샘물처럼 다시 솟아올랐다.
잘 하자.
잘 하자.
잘 해서 좀 잘 살아보자...
그랬다.
간절함에 좀 더 간절함을 보태어 언제나 내게 간절함이 머물러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