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보따리장수의 달
보따리장수의 달
최승자
시간 속에서 시간의 앞뒤에서
흘러가지도 않았고 다만 주저앉아 있었을 뿐
日月도 歷史도 다만 시간 속에서
나는 다만 희미하게 웃고 있었을 뿐
먼 길 보따리장수의 달
흰 하늘 눈 먼 설원(雪原)
보따리장수의 달만 흘러간다
흰 하늘 눈 먼 설원(雪原)
가도가도
흰 하늘 눈먼 설원(雪原)
신문을 보다가 최승자 시인이 11년만에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문학과 지성사]을 내었다는 보도를 보았다.
새 시집 중에 마음에 걸린 시이다.
참 오래간만에 소리내어서 읽어보고 싶은 시였다.
저절로 소리를 내어 읽고 있었다.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다가..
흰 하늘 눈 먼 설원
흰 하늘 눈 먼 설원
하고 자꾸 말하다보면 가슴이 텅 비는 느낌이다.
뭔가 사라지는가하면,
텅 비는가 하면,
바람 소리가 쉥하는 가면,
그 가운데 앉아있다.
몸 주위를 바람이 싼다.
사방 막힌 방에서...
이어 시집의 다른 시 한 편이 연이어 떠오른다.
먼 방, 빈 방
먼 방 빈 방
빈 방에서
저 먼, 없는 폭포 소리를 듣는다
(먼지는 내가 빈 방을 만들어냈고
빈 방이 저 먼, 없는 폭포 소리를 만들어냈다)
먼 방 빈 방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폭포 소리는 흘러내리는데
호젓이 고즈넉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먼 방. 빈 방
나는 마치 시인인 듯, 독자인 듯...
누가 누구인지 모르게 시인이 만들어놓은 방으로 마치 내 방인 듯 앉았다.
이 진한 것,
진함은 고립을 만든다.
시인의 진함이 고립을 만들었다.
어쩌면 나에게도 그런 진함이 있어... 한 편의 시에 낯설음도 없이 시인의 방에 들어간 것은 아닐까?
내 진함.
혹은 탁함.
반갑다..
아주 오랜만에 삶의 진함을 만났으며,
고립을 만났으며,
누구였던가...
쟝 그르니에가 말했다.
고통은 언어를 만나서 사라진다.
딱 그런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