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거림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목 맬 필요 없어요

발비(發飛) 2009. 12. 18. 10:46

어제는 퇴근 후 두 자리에 갔었다.

 

한 곳은 회사에서 캐릭터 대상을 탄 기념으로 사업부 전체가 모인 송년회였었고,

또 한 곳은 학교에서 종강모임을 했었다.

 

퇴근 시간보다 일찍 나와 사업부 전체가 처음으로 모두 모였다.

밥을 먹을 때는 식당의 특성상 여기저기 삼삼오오 흩어져서 먹었고,

다른 회사들은 술판이 벌어졌을 터이지만, 우리는 작은 커피숍에 모두 끼어앉았다. 사람들이 스무명은 된 것 같은데...

오래된 직원도 있었고,

새내기 직원도 있었다.

각자 자기 소개를 했다.

재기발랄한 자기표현들이 이어졌다.

난 언젠가부터 성질이 더럽다는 평을 받고 있는지라.. 그냥 성질이 더러운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정말 성질이 더러운가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의심하는 부분이지만,

그냥 그렇게 공공연히 남이 나에게 말하고, 내가 남에게 말할 수 있다는 자체가 괜찮으므로...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그 자리를 나왔다.

한 학기동안 몸과 마음을 의지해서 몰입했던 교수님들과 친구들을 만나야 하니까.. 정말 열나게 뛰어서 종강모임 장소까지 갔다.

교수님들과 친구들이 늦게 들어선 나를 향해 말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밝은 눈으로 맞아주신다.

선배들도 많이 왔다.

2차는 맥주집이었다.

소설선생님과 비평선생님 사이에 앉았다.

"이걸 두고 좌청룡 우백호라고 하지요?" 하고 선생님들께 말하니, 웃으신다.

그러다보니, 선생님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좋았다.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는 말이 아니라, 문학인으로서 오가는 말들은 좀 달랐다.

그리고, 나는 그분들의 말들을 들으면서 삶의 진지함에 대해 생각했다.

 

 

후회되었다.

회사동료들과 모인자리에서 한 말때문이다.

성질이 더럽다고 말할 것이 아니었다.

사실은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더랬다.

견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에 대해, 그리고 견디는 시간은 나때문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때문이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비바람이 절로 그 자리를 떠날 때 우리는 다른 자리로 위치 이동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회사는 지난 일년동안

남극의 황금펭귄이 알을 품고 겨울을 나기 위해 서로의 몸을 최대한 붙이고, 하루에 몇걸음씩만 자리이동을 하면서 뭉쳐있었던 그 모습과 같이... 우리는 그렇게 비바람을 견뎠다.

그리고 지금은 좀 나아졌다.

이제 우리는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알에서는 작은 새끼 펭귄들이 속속 나오고 부화되고 있다.

이들을 끌고 어디론가 이동을 해야한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후회되었다.

삶의 진지함에 대해 기준을 두었다면, 그 말을 했었어야 했다.

 

회사사람들은 견디어냈다.

그것이 값어치가 있으려면, 어디로 가야할것인지 사방을 응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디어야 하는 이유는 내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위치때문이다.

어차피 삶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당한 것이라는 전제 안에서이다.

견딘다는 것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윤후명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목 맬 필요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