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동과 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은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몇 가지의 실험과 철학들로 증명해 내고 있다.
20여가지의 실험을 읽으면서 같이 해 보았다.
난 100퍼센트 동양의 사고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50퍼센트 이상은 되는 듯 싶었다.
동양과 서양이 다르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아는 일이지만,
실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반복적으로 세뇌가 되어야 하는 작업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동과 서의 문제만이 아니라 개인과 개인과의 문제이기도 하고
회사와 회사와의 문제이기도 함으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관계라는 구도 속에서 해법이 풀리는 것이니까.
이것조차도 역시 동양적 사고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푼다는 것은 나와 타자와의 관계를 인정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므로 그렇다.
서양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와 타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나의 생각을 정리하면 그것으로 이해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정리한 생각을 사회적으로 정리하고자(이것은 정리가 아니라 전달하고 성취하고자)한다면
자신을 중심으로 정리한 생각들을 자신만의 논리로 타자를 설득하면 되는 것이다.
토론이라는 것은 거기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중심적 사고가 아니라면 토론의 과정은 필요없을런지도 모른다.
자신과 자신끼리 부딪히는 과정을 지나고서야 사회안의 룰이 생기는 일일터이니 말이다.
동양적 사고에서 본다면 이미 생각의 시초부터 타인은 이미 들어와 있다고 보면 된다.
내가 이런 생각이나 행동을 하게 된다면 타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하는 것들이 이미 첫 사고안에 속해 있으므로
긴 사고의 과정이 필요하고 정수된 것만 표현될 것이므로 많은 말조차 필요하지 않다.
이미 결론안에 타인이 속해 있다는 뜻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
"진리는 토론의 정수이다."
지극히 서양적인 결론 도출방법이이다.
자신만의 생각으로 정립된 사고를 토론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정제되고 걸러진다는 뜻이다.
이것은 자신의 견고함이 강하면 강할수록 토론을 통한 설득의 시간은 길어질터이고, 토론의 시간이 길면 길수록 자신의 단단한 생각의 결은 그냥 둔 채 사회적인 모양으로 정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관계라는 것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서양에서는 관계라는 것은 그 의미가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객체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객체이므로 그것은 나와 다른 것이라 연계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동양의 사고에서 객체와 객체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것이 바로 '기'라는 것이다.
'기'라는 것은 '기운'이라는 말인데, 세상 모든 것들에게는 '기운'이 있다.
이 기운이 색을 만들고, 모양을 만들고, 성격을 만들고, 관계를 만든다.
이책에서 언급한데로
서양에서 우주는 텅빈 공간인데, 반해 동양에서 우주는 기로 가득차있으며, 이 기는 끊임없이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가 곧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기를 근간에 둔다면 이미 타자는 타자가 아니라 나와 일체를 이룬 무엇이 된다는 것이다.
당연이 배려하고 내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눈 또한, 이 책에서는 구슬시야(?) 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대상을 보는 눈을 대상 앞에 있는 내가 아니라 대상 앞에 구슬을 두어 대상과 내가 구슬 안에 함께 있다는 것이다.
구슬에 비친 사물의 모습이 실제 자신이 보고 있는 사물이라는 이야기이다.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비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다.
동과 서
위의 구구한 이런 이야기들도 재미있었지만,
다르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동과 서가 달라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은 이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 채로 만나려고 한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음이 전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을 이제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난 서양적 사고 방식으로 가서
나에 대해서 집착해보고자 한다.
나는 대상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대상을 바라보는가...
내가 대상과 다르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대상과 나를 분리시키지는 않는가 하는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나의 행복에 주안점을 두어 생각한다고 스스로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그 생각으로 세상의 장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사회 안의 일원으로 끼어있어야 하는것인데.
내가 사고를 하는 단계에서는 마치 서양의 사고를 가진 것처럼 나 자신의 생각을 나의 입장에서 정리하고 구축한다.
그리고 그들이 나와 다르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과 다르다라는 결론을 만들고
다른 그들과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닫아버리지는 않았던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를 만났다.
그는 당연히 나와 다르다.
너무 단단한 내가 있다면...
너무 단단한 그가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결론은 항상 이렇게 내려진다.
"그는 너무 달라. 그래서 안되겠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인정하고도 인정한 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걸어봐야겠다.
걸어봐야겠다.
길 위를 걸어서 길 위에서 움직이고 있을 '기'를 온 몸으로 받아봐야겠다.
그 '기는 누군가를 스쳐 누군가의 기운과 합해져서 나에게까지 온 것일테니, 난 길을 걸어야겠다.
그들의 몸들을 휘감았던 '기'를 내 긴 호흡으로 내 속을 한 바퀴 돌게 하여,
내 '기'가 그들 누군가에게, 그들의 '기'가 내안에
그렇게 소통을 하게 하여야겠다.
소통을 원하는 나는 길을 걸어야겠다.
길 위에서 거친 호흡을 기꺼이 해야겠다.
동과 서가 다르다면,
동과 서의 길을 걸어야겠다.
후다닥 읽었지만, 잔결에 뭔가가 많이 끼인 느낌이다.
책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읽혔다.
걸어야지.
다르니까 걸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