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텐텐
텐텐(轉轉: Adrift In Tokyo, 2007)
일본/ 101분/ 감독 미키 사토시/ 오다기리 죠, 미우라 토모카즈
텐텐과 함께 한 주말이다.
제목을 보고 영화의 내용을 가늠할 수 없었으나 첫 화면에 뜨는 한자를 보고는 아! 싶었다.
전전하다.
새삼 잊었던 단어, 전전...그런 말이 있었구나.
2008년을 사는 그것도 일본의 동경에 사는 그들처럼 대한민국 서울이라는 곳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딱 맞는 표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자는 다르지만... 전전이라는 말 뒤에 긍긍이라는 말이 붙으면 의미확장 .. 실감 팍팍난다. 전전긍긍!
대학생인데, 8만엔이라는 빚이 있는.. 삶에 어떤 흥미도 갖고 있지 않는 후미야가 나온다.
그리고 후미야에게 빚을 받으러 온 후쿠하라가 있다.
후쿠하라는 후미야를 찾아와 빚을 갚으라고 협박을 하고..
그 며칠 뒤 후미야에게 자신과 도쿄산책에 동행해줄 것을 요구하며, 그 댓가로 100만엔을 주겠다고 한다.
빚을 갚을 요량으로 두 사람의 산책이 시작된다.
(두 사람이 도쿄를 산보(산책)이라고 해야겠지만, 일본식 단어인 산보가 정말 더 잘 어울리는 관계로 앞으로는 산보라고...)
이 산보는 후쿠하라가 살인에 대한 자수를 하기 위해 경찰청으로 가는 길이다.
도쿄...
고등학생들이 떼로 몰려다니고,
과일가게에서는 과일이 간혹 바닥으로 구르고,
자전거로 연신 뭔가를 배달하고,
일상적인 모습인데도 한번도 그런 곳에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후미야는 적응 안되는 모습으로 허둥거린다.
-새로 이사한 우리 동네 시장을 지나는 내 모습이 생각났다는...
학교에서 들리는 음악소리에 빠진 후쿠하라,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주머니는 자전거도로를 막고 있는 이들에게 비키라는 듯 기다린다.
-내가 잠시 빠진 어느 상황이, 누군가 자신의 길을 잘 가고있던 어떤 이를 막게 되기도 하겠다는 생각을...
후쿠하라는 바람을 핀 아내를 팼는데, 패다 죽인(그의 표현대로) 아내와의 추억장소를 투어하고 있는 중.
아내와 첫 키스를 한 신사, 아내와 싸운 후 화해를 할 때 갔던 레몬맛이 나는 오교치집.
오교치집에서는 아들에게 시달리는 여주인이 하는 말 "천천히 즐기세요!"
-자신의 삶과 타인과 관계되는 삶을 구분할 줄 아는 여주인이구나 하며, 이건 코메디같은 이야긴데 난 왜 공감이 가는거지 하고 생각했다는...
후쿠하라를 기다리다가 전자기타를 치는 이상한 넘(?)을 따라 가며 이상한 짓을 따라하는 후미야.
그 길이 비록 자신의 길은 아니었지만, 그래서 잠시 동안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하지만 정신이 드는 순간 필사적으로 뛰어 제자리로 돌아와야하는 , 그런데 돌아오는 길이 쉽지만 않겠다는 생각을 ...
후쿠하라가 마지막으로 간 곳은
자신이 결혼식에서 가짜 하객으로 일할 때 아내의 역을 했던 여자의 집, 그 집에서 여자의 조카에게 다시 가짜 남편역과 가짜 아들역을 하게 된 후쿠하라와 후미야...
가짜지만 아빠, 엄마, 자신 사촌의 모습으로 앉아있는 후미야에게는 가족이라는 공간으로 느껴진다.
어릴 때 자신은 부모에게 버려졌고, 양부모밑에서 자랐고, 남들은 추억이라는 과거가 자신에게는 상처뿐이라 한번 들추려고도 하지 않았던 일들이 하나씩...
아니 순식간에 시간을 넘어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의 모습이...
후쿠하라가 자수를 하기 전날에 꼭 먹겠다는 카레를 먹자고 하던 날,
눈물을 흘리며 카레를 먹던,,, 아이처럼 눈을 비비며 카레를 먹던, 자수를 말렸으면 한다고 생각했다는 후미야..
후쿠하라는 후미야에게 백만엔을 남기고 경찰청으로 향하고..그들의 산보는 끝났다.
참으로 소소한 이야기이다.
도쿄로드무비라고 할 수 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영화를 본 뒤 사람들이 사는 모습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그런데 내가 사느라 보지 못했던 것, 내가 사느라 되돌아보지 못했던 것을 아주 소소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들의 부모님의 세대들처럼 추억이라는 것이 100퍼센트 아름다운 이야기일 수만은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나는 내게도 후미야처럼 의도적으로 상실했던 기억들을 찾아서 본다면 추억이라는 이쁜 이름으로 되살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그런 이쁜 일들이 있었을런지 모른다.
절망적이지 않다.
과거가 절망적이지 않다는 것은 미래를 보다 선명하게 예측할 수도 있겠다.
나는 타향인 서울을 전전하며, 전전긍긍하며 산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런 내게는 소소한 것들로 묶은 선물.
금요일 밤부터 오늘 일요일까지 세번을 보았다.
우스운 일이지만, 세번다 졸면서 퍼지면서... 보고 또 보았다.
왜 졸리지?
근데 이게 약간 행복한 느낌이었다는...
영화를 보면서 그 나른한 행복감, 나의 긴장을 풀어주는 나른함... 이것들이 나를 희미하게 웃은 채 잠들게 했다는...
영화가 지겨워서 졸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발맛사지라도 받은 듯 나른한 느낌... 이 느낌 때문에 보고 또 보고 또 보았다.
간만에 나를 푹 자게 만든 것이 '텐텐' 영화라는 사실..
분명 오다기리 죠가 연기한 후미야는 영화가 시작할 때나 끝날 때나 뭐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거부하던 지난 일들을 추억으로 되살리며 서서히 뒤에서 환해지는 느낌.
앞을 비추는 빛은 아직 보이지 않았으나 과거로부터 작은 불빛 하나가 그를 비추면서 달라지는...
오다기리 죠가 괜히 소리를 지르면서 아이처럼 굴던 그 모습, 또 카레를 먹으면서 찔끔거리던 눈물,
밥상을 마주 하고 앉은 네 사람의 모습...그저 부러울 뿐...
영화 속에서 빠져나오지 않고 영화 안에서 졸던 나는 이어 잠을 자고, 또 자고 싶어 일어나자 마자 또 영화 안으로 들어가고,
또 자고... 그렇게 몇 번.
11월의 마지막 날. 텐텐과 함께 릴렉스.
오다기리 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오다기리 죠.
완전 최고다.
5.6년 전쯤에 만들어진 '밝은 미래'에서 아사노 타다노부와 함께 확실하게 각인되었다.
아사노 타다노부는 그 후에 '카페 뤼미에르'에서 최고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었고,
오다기리 죠는 '메종 드 히미코' '유레류' 등 에서 완전 개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었다.
그런데 텐텐... 여기서는 '메종 드 히미코'에서 보다 더 강력하다.
제대로다.
그가 멋진 배우가 되었다.
점점 나아지는 무엇을 본다는 것은 참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