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 아버지의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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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의 일이다.
처음 아버지의 뇌가 엉켜버린 것이...
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미국에 사는 동생집에 계신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잘 다녀왔냐?
좋았냐?
어느 나라를 갔다왔냐?
여행 중 엉망이었던 나를 정리하느라 미장원에 있었더랬다.
번거러운 마음에 대충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었다.
핑계를 대자면 시차때문이라고 하자.
정신없이 낮과 밤을 헤매며 잠을 잤다.
다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미국에서 쓰러지셨단다.
지난 번에는 왼쪽 뇌였는데 이번에는 오른쪽 뇌를 손상받으셨고,
말씀을 못하신단다.
그리고 몸을 못 움직이신다했다.
엄마와 동생은 걱정말라면서 정신을 잘 챙기라고 한다.
난 라면을 끓여놓고 있었다.
엄마와 동생의 말을 들어서가 아니라 난 전화를 끊고 라면 한 냄비를 단숨에 다 먹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멍하기만 할 뿐...
또 나를 기다리신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사히 잘 돌아오기를...
딸은 이번에도 선택을 했었다.
모든 것이 다시 처음으로 헝크러져 도무지 선 자리에서는 정리되지 않았다.
아니 선 자리에 그대로 서서 어떤 일도 처리하고 싶지 않았으며, 이젠 혼란에 대한 면역력? 혹은 쉽게 해결하는 방법을 알아버린 것이다.
선 자리에서 떠나 ... 되도록 멀리 떠나 '나' 자신으로만 사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치유책이라는 것을..
거기에는 나를 둘러싼 환경들의 묵언이 필요하다.
아니 나를 둘러싼 환경들을 무시해야만 한다.
내가 떠난 사이 그들이 할 걱정따위는 무시해야만 한다.
나의 환경 가장 앞 자리에 부모님이 계셨다.
오늘 아침,
동생이 전화를 해서 아버지가 마법처럼(그 곳 의사의 말을 빌린다면) 좋아지시고 계신단다.
아마 일주일 정도 후면 일단 한국으로 모실 수 있다는 말을 전했다.
말을 알아들으시니... 전화를 바꿔어주었다.
전화기를 받은 건지 어쩐지도 모르면서 아버지를 불렀다.
그저 뭐라고도 말하지 못하고... 괜찮다고... 또 괜찮아질 것이라고 ... 걱정하지 말라고 ... 그렇게 말했다.
신음소리 비슷한 아버지의 대답이 들린다.(대답이다)
언제나 그렇듯 괜찮아졌다.
언제나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아졌다.
우리 가족에게는 언제나 무슨 일이 생겨도 항상 괜찮아졌다.
우리 가족은 끊임없이 무슨 일이 생겨도 항상 누구보다도 괜찮은 사람으로 남았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정말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우린 울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울지 않았다.
웃을 수 있는 일을 만들었다.
동생이 그랬다.
아버지와 병실에서 여행 뒤 내가 올린 글을 읽고 있었다고.
아버지 심심치 않으시게 블로그에 글을 많이 올리라고.
동생의 전화를 받고 여행 중 사진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아버지가 좋아하실만한 사진을 골라보았다.
없다!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실 것 같은 사진으로 ... 아무데나 철퍼덕 앉아있다고 혼날 것 같은 사진으로....
아버지!
위에 것은 지구 반대편 페루의 '리마'라는 도시의 중앙광장이구요,
아래 것은 볼리비아 우유니 투어 중에 만난 플라맹고 서식지에서 찍은 거예요.
이제는 언제 어느 곳에서나 내 자리인 듯 편하게 앉아 웃을 수 있는 딸이거든요.
점점 세지고 강해져서...
곧 무쇠인간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그런 딸이거든요.
아무 일 없을 거니까...
또 그렇게 될 거니까...
어떤 걱정도 하지 마세요.
곧 볼거니까... 보고 싶다!!!!
다녀온 여행 수다를 펼쳐야 하는데... 좀 있다가...
그리고 월요일부터 다시 출근해서 열심히 또 일하거니까...
아버지도 꼭 착하게 잘 지내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