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아닌 날
밥값보다 비싼 음료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이 딱 그런 날이다.
"선배님! 왜 점심 안 드세요?"
"지금 먹잖아."
앞자리에 앉은 후배는 내가 먹고 있던 컵라면을 밥으로 생각하지 않는 듯 나에게 말했다.
"오늘은 밥으로 배가 불러서 다른 것이 생각 안 나는 것이 싫은 날이네.
밥보다 더 비싼 커피 한 잔을 마시던가, 천연 과일 주스를 마신다던가... 비싼 치즈케익 한 조각을 먹고 싶은 날...
그런 날이네. 밥으로 배가 불러 그 사치스런 꿈을 잃고 싶지 않는 날 말이지."
"선배님, 오 맞아요. 정말 그런 날 있는데..., 정말 그런데요."
옥상에 올라갔더니 바람이 차서 시원하다.
세상의 주인이 마치 건물인듯
건물은 세상에는 아무 일이 없다는 듯 조용하다.
단지 바람만 조금 분다.
프라스틱 의자 하나 갖다 놓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을 따라가며 눈을 감고 바람도 느껴보며,
어디선가 흘러오는 낯설은 냄새 한 자락에 온 신경을 걸어보기도 하며,
이 세상에 내 몸 하나 얹어도 아직은 여유가 많은... 곳일거라는 생각을 하며,
아직은 내 몸을 몇 발자국씩 움직여도 그 만큼의 공간정도는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밥으로 배가 불렀을 때는 할 수 없는 생각이다.
향 좋은 에스프레소 한 잔이나 지금은 구할 수 없는 딸기주스 한 잔을 앞에 두고 행복해질 나를 꿈꾼다.
배가 부르지 않아 참 좋은 시간이다.
고요하게 바람이 부는 고요한 11월의 첫 날이다.
내가 물이라면 장마철 오색계곡 사이로 흐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삶은 끊임없이 빠른 속도로...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