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보들레르] 그녀는 온통

발비(發飛) 2007. 8. 10. 13:27

그녀는 온통


 

보들레르

악마가 내 다락방으로
오늘 아침 나를 찾아와,
내 흠을 잡아 내려고,
하는 말이, [좀 알고 싶은데,

그녀의 매력을 이루고 있는
가지가지 아름다운 것들 중에서,
아리따운 그녀 몸을 꾸미고 있는
검거나 붉은 것들 중에서,

무엇이 가장 좋은가?]ㅡ 오, 나의 넋이여!
너는 이 [미움꾸러기]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지,
[그녀에 있어선 모두가 향기,
무엇이라 고를 수 없다.

모든 것이 나를 호리니,
무엇에 끌리는지 나는 모른다.
그녀는 [새벽]처럼 눈이 부시고
[밤]처럼 위안을 준다.

게다가 조화가 너무도 미묘하여,
그 아름다운 모뚱일 온통 지배하니,
그 숱한 화음을 악보에 적어 내기엔
미약한 분석으론 불가능하다.

오, 신비로운 변모여,
내 모든 감각이 하나로 녹아들다니!
그녀 숨결은 음악 소리를 내고,
그녀 목소리는 향기를 풍긴다!

 

-악의 꽃

-우울과 이상

-마흔 한 번째

 

앞자리에 앉았던 후배가 회사를 그만두는 날, 어제.

 

후배에게 인사를 하러 왔던 기획팀의 남직원에게 후배가 말했다.

"이별 선물 없어요? 말로만 떼울거예요?"

"......"

 

주섬주섬 양복 윗저고리 지갑에서 뭘 꺼낸다.

"이거 제가 갖고 다닌지가 5년쯤 된 걸거예요. 이거 드릴께요."

 

종이에 깨알처럼 적힌 글씨들이 보인다.

"보들레르?"

"전 이 시가 좋아서 갖고 다녔는데, 그냥 드릴께요."

"이걸로 작업하시는 거세요?"

.

.

.

난 궁금했다.

보들레르의 어떤 시가 그의 가슴에서 5년 동안이나 간직되고 있었던 걸까 싶어서...

 

"나도 보여줘라."

보들레르의 시 [그녀는 온통] 이다. 

(집에 와서 다시 찾아보니 내가 갖고 있는 책에는 [그녀는 고스란히]라고 되어있었고, 번역투가 다르긴 한데 어쩐지 내가 갖고 있는 책보다는 깨알같이 적혀있는 이 번역투가 맘에 든다)

 

"오랫동안 간직한 건데 내가 가져도 되나? 좀 그런데.."

"아마 이제 그 시를 가지지 않아도 되어서, 시를 보내는 것이 아닐까?"

"그런걸까요?"

 

좀 더 있다가 후배는 짐을 싸고, 정리하고, 버리고.....

그러다 말이지 그 쪽지를 잃어버렸다. 이리 찾고 저리 찾고... 못 찾았다.

 

내가 옮겨놓은 그의 시는 사라졌다.

내게 옮겨앉았다.

오랫동안 그의 윗저고리에 꽂혀있던 시는 어쩌면 내게 오기 위해 세상과 이별을 감행했었나보다 싶기도 하더라.

 

보들레르가 말한 그녀,

 

사실 보들레르는 그녀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그녀는 온통 이라고만 말하고 있다

눈도 코도 입도 그렇다고 성격도... 뭐라고 규정할 수 는 없는데

그녀는 때로 새벽처럼 빛나고 밤처럼 포근히 안아준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가 황홀하다고 했다.

 

뭐라고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설명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

그저 냄새, 기운, 뭐 그런 것들로 감밖에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태를 사랑이라고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아니 그렇다.

뭐라고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는데 내 온 몸을 싸고 있는 어떤 기운 같은 것,

 

보들레르는 그 어려운 것을 시로서 설명하고 있다.

 

그 직원은 그의 그녀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는 보들레르에게 동감했을 것이다.

작업용이 아니라 누군가 그에게

"너 그 여자가 왜 좋은건데?" 혹은 "내가 좋은 이유가 뭐예요?"

하고  묻는다면, 그는 이 시를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 이 시가 그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지만, 이게 모두야."

 

그는 언제나 내게 구체적이지 않는, 손을 저어봐도 아무 것도 없는... 그러나 지금은 내게 가득함으로 머물러있다.

그러므로 언제나 내 곁이 아닐 수 있다는 커다란 맹점을 가지고 있는...

 

그는 온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