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대로 詩

[마종기] 바람의 말

발비(發飛) 2007. 2. 28. 14:12

바람의 말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강은교 시인은 마종기 시인의 '바람의 말'이라는 시를 

'시인세계'봄호의 '시에게 전화걸기'라는 챕터에 소개하면서 '치료'라는 말을 사용했다.

 

'시의 치료, 혹은 치유성'에 대해 언급하며 '바람의 말'을 전했다.

마종기 시인의 '시인' 이전의 직업이 '의사'라는 이유만은 아니겠지.

강은교 시인이 그렇게 일차원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겠지.

 

그럼, 나 시인의 치료를 받아보자.

시인의 처방을 받아보자.

만약 내가 지금 아픈 것이라면, 몸이 아니라 마음인 것이 분명하니... 그것은 알 것 같으니.

 

시인이 시인 이전에 의사라는 것에 마음을 풀어놓으며 내 마음을 시 앞에 얌전히 앉힌다.

단어, 아니지 낱자 하나 하나가 청진기의 차가운 이물감으로 내 마음에 낯설게 다가온다.

익숙하지만 낯선 낱자들.

콩닥거리는 것이 청진기 안에서 들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콩닥거리는 것은 내 안의 내 심장이 뛰는 소리이며, 콩닥거리는 것을 듣는 것은 내 안의 달팽이관일 것이며, 콩닥거리는 진동을 느끼는 것은 내 모세혈관 사이사이에 박힌 통점들일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것이 분명하다.

치유의 언어라는 '시' 앞에서 살아있는 나를 확인한 것이 일단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아직 살아있었구나!

 

이제 치유의 언어인 '시'가 진단의 결과를 말한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

 

"우리 모두가 떠난 뒤"

그래. 우리 모두가 함께 떠나길 원한다.

우리 모두.... 지금 현재 이 사람들 모두 모두 모두 모두  모두, 지금이 아니라 지금의 생이 아니라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서로가 영혼이 되어 그러니까 모두가 영혼이 되어( 그렇다고 죽음처럼 어두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천국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곳이길... 그건 안되겠다. 객관적일 수 없을테니. 아무튼 영혼의 세상에서) 그 곳에서 당신들 모두를 만나면 내 마음이 그대로 전해질까?

내 마음 그대로가 전해질까? 보이는 마음이 그대로 보여질까?

보여질 것이라 믿는다.

몸이 있어 몸을 통해 가는 동안 잠시라도 가는 동안 변했을 내 마음이

영혼만 존재하는 세상에서라면 그대로 전해질 것이다.

속으로 웃으면서 우는 상을 짓지 않을터이고

속으로 울면서 웃으면서 이야기하지 않을터이고

화가 나면서 무심히 말하지 않을터이고

영혼만이 존재하는 곳에서 이 세상에 함께 했던 모두를 만나고프다.

이 세상에서 만났던 모두를 만나고프다.

 

"꽃 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어느 누구도, 단 하나도 남김없이 꽃씨를 품듯 품고 갈 것이다.

몸이 없는 세상에서 이 곳에서 만났던 모두의 씨를 고루 고루 심어두고 꽃밭이라 부를 것이다.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오늘 이 순간이, 잊지 못할 사람들이 모두 꽃잎이 되어 날릴 것이다.

나도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꽃이 되고, 내게도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꽃이 되고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될 것이다.

진한 내나는 꽃이 되기도 하고, 쏴한 내나는 꽃이 되기도 하고, 무심한 내나는 꽃이 되기도 하고

간혹은 양귀비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안될 일이 없는 세상일 것이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금은 참을 수 없는, 막을 수 없는

혹은 참아야만 하는, 닫아야만 하는, 덮어야만 하는 그런 일들이지만, 이리 끙끙대고 있지만,

그곳에서 한 점 바람인양 오해할만큼 가벼워진다면

정말 가벼워진다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그래 잊지 않을께. 아무리 피곤해도 잊지 않을께. 곧 그럴거라 믿으며 피곤해도 잊지 않을께.

나 착하니까......

나 오늘도 내게 말했지.

난 나쁘지 않아. 난 나쁘지 않아. 난 착해.

착한 나는 피곤해도 잊지 않을께.

언젠가 함께,

몸을 버려두고 영혼만으로 움직이는, 바람처럼 맨살로 부대끼는 세상에서

지금 만났던 모두를 만난다면

그때 바람처럼 맨살로 부대끼며 살아갈 날을 위해 지금은 피곤해도, 잊지 않을께.

내 숨소리가 바람소리인 듯.

바람소리가 영혼만이 움직이는 세상에서 만날 지금의 모두인듯.

내 숨 쉴때마다 내 안에서 불어나오는 바람이 모두인 듯,

모두인듯

함께인듯

내 숨소리를 들으며 바람소리를 들으며 바람의 말을 들으며

그래 그렇구나

그래 그랬구나

그래 그러자

하는 바람의 말을 들으며  나 괜찮지  나 괜찮지 하고 대답하는 바람을 일으키며,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바람이 바람에 밀려 멀리 멀리 날아간다.

바람의 시간이 멀어진다.

영혼의 시간이 멀어져간다.

 

당신, 지금에서 잠시 멀어졌다 오니 어떠신가요?

치유의 언어인 '시'가 바퀴달린 의자를 당긴다. 스르륵 밀리며 당겨지며 문득 몸의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잠깐씩,

사람은 조금씩 달라요. 견디는 힘이 다르고 견디는 방법이 달라요.

당신은 이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영혼의 세상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몸의 세상에서 사는 동안은 이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몸이라는 것은 영혼보다 무거워 움직이는 것이 어려워 만나기도 힘들고 만나면 헤어지기도 힘든거지요.

몸은 영혼보다 무거워 움직이는 자리마다 자국을 내고야 말지.

 

마종기 시인의 '바람의 말'

난 강은교 시인의 말을 믿고 그대로 따랐다.

시인이 치료사인 시을 말하기에 시인의 말을 따라 '시' 앞에 내 가슴을 내밀었다. 

처방전도 받지 않고 의상의 방을 없이 나오는데....

병원냄새만 맡으면 몸이 낳는다는 시골노인네처럼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 바람이 되어 숨바람이 되어 내 안에서 함께 불고 있다. 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