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코 포파]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1.
내 넝마조각들을 돌려다오
비단빛 미소 순수한 꿈의
내 작은 누더기들을
줄무늬 진 예감과
레이츠처럼 생긴 내 힘줄들을
줄세공한 욕망의 물방울무늬
내 희망의 누더기들을
옥양목 시선들과
피부를 벗겨낸 내 얼굴을
내 누더기를 돌려다오
내 너에게 점잖게 요청하노니
2.
그대 괴짜여 들어라
네 하얀 머릿수건을 집어치워라
우린 서로 잘 알잖아
어린 시절부터 함께
같은 밥그릇 핥으며
그대 악마의 눈을 가진 칼과 함께
같은 침대에서 빈둥거렸지
이 이상한 세상을
그대 셔츠 속의 뱀과 함께 걸으며
들어라 배신자여
네 하얀 머릿수건을 집어치워라
왜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는거지
3.
냐는 너를 목말 태우지 않을거야
너를 네가 말한 곳으로 데려가지 않을거야
설령 내가 황금 신을 신고 있다 하더라도
설령 내가 삼륜마차를 타고 있다 하더라도
바람의 마차 위에서
설령 무지개에 묶여 있다 할지라도
나를 유혹하려 하지 마
내 발이 실 바늘로 꿰매져 매듭에 묶인 채
내 주머니 속에 있다 해도 나는 하지 않을 거야
내 발이 깎여서 천한 지팡이가 된다 해도
나를 위협하려 하지마
내가 심지어 구워지거나 너무 타버리거나
날것이거나 양념을 했거나
심지어 꿈속일지라도 나는 하지 않을 거야
너 자신을 조롱하지 마
그건 안 돼 나는 하지 않을거야
4.
안으로 벽이 쳐진 내 무한으로부터 나가줘
내 심장 주위를 춤추며 도는 별들의 고리
내 한입거리 햇빛 밖으로
흥겹게 뛰노는 내 피의 바다
나의 밀물 나의 썰물
내 유배된 침묵 밖으로
꺼져, 내가 말했지, 꺼지라고
내 살아있는 함정
내 안의 발가벗은 아버지-나무 밖으로
꺼지란 말이야, 내가 얼마나 더 오래 소리쳐야 해
산산조각 나는 내 머리 밖으로
밖으로 밖으로 제발 꺼져줘
5.
너는 아기 인형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나는 내 피로 그것들을 씻기고
내 피부의 누더기를 입히지
그들을 위해내 머리카락으로 그네를 만들고
내 척추로 장난감 수레를 만들지
내 눈썹으로는 글라이더를 만들고
그들을 위해 내 미소로 나비를 만들고
사냥하고 시간을 죽이기 위해
내 이빨로 맹수를 만들지
그런데 이런 게임은 도대체 뭐야
6.
너의 뿌리가 되는 혈통과 왕관에 저주 있으라
그리고 네 삶과 다른 모든 것에도
네 두뇌 속의 모든 말라붙은 이미지에
네 손가락 끝에서 불타고 있는 모든 교활한 눈길에
네가 떼어놓는 모든 발걸음에
부디 세 주전자의 심술궂은 물속에 빠지기를
세 개의 불길한 난롯불 속에
이름도 우유도 없는 세 개의 함정 속에
그리고 네 목구멍엔 얼음처럼 차가운 숨결
네 왼쪽 젖꼭지 밑엔 자갈
그리고 그 자갈 속엔 새鳥-면도날
검은 새들 중 가장 검은 새를 낚아채 무無의
네 혀 밖으로 떨어져내린 독미나리를 후루룩 소리 내 먹을거야
너는 보게 될거야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8.
그래서 너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지
넌 재가 된 유골로 나를 만들 수 있어
내 요절 복통의 쓰레기로
내 무료함의 찌꺼기로 나를 만들 수 있어
너는 화려하게 치장할 수도 있어
너는 내 짧은 기억의 머리카락을 움켜질 수 있지
그 기억의 텅 빈 셔츠 안, 나의 밤을 껴안을 수도 있어
나의 메아리에 키스를 하고 키스할 수도 있지
그리고 너는 사랑하는 방법조차 모르지
9.
달려라 괴짜여
우리의 발자국들이 서로를 깨문다
우리 등뒤의 먼지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 의미도 아니지
나는 네 싸늘함을 통해 본다
네 극단성을 조절하라
이것은 그리 대단한 게임이 아니니까
왜 우리는 우리의 누더기들을 뒤섞었던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누더기들을 넘겨줘
누더기들은 네 어깨 위에서 막 시들어가고 있지
그것들을 긁어보아 네 무명의 상태로 꺼져
달려라 괴짜여 한 괴짜로부터
너는 눈도 없니
여기에도 괴짜가 있네
1.
당신의 혀가 검게 변하기를
당신의 한낮 당신의 희망
모든 것이 검게 되기를 오직 내 한기만 희어지기를
그대 목구멍에 있는 나의 늑대여
폭풍이 그대의 침대가 되기를
내 두려움이 그대의 베개가 되기를
잠들지 않는 그대의 풀밭이 넓어지기를
그대가 먹은 모든 음식이 불처럼 뜨겁기를
그대 밀랍의 이빨들
오라 폭식가여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씹으라
그대의 바람과 그대의 물과 그대의 꽃들을 침묵시키기를
모든 것의 혀를 묶어놓기를
오직 나의 이빨 가는 소리만이 여전히 시끄럽기를
그대 목에 있는 나의 매여
그대의 어머니를 위한 더 작은 공포여
11.
나는 내 얼굴에서 그대 얼굴을 닦아버렸네
내 그림자에서 그대 그림자를 찢어버렸네
그대 안의 언덕들을 평평하게 만들었고
그대의 평원들을 구겨 언덕으로 만들었지
그대의 계절을 서로 싸우게 했고
그대에게서 지구의 모퉁이를 발로 차버렸지
그대 주변에 내 인생길을 묶어버렸어
내 너무 자란 불가능한 인생길을
그러나 자 이제 나를 만나려고 애써보게
12.
그대가 달콤하게 말하는 시들지 않는 꽃들로 충분해
그대 사탕발림의 하찮은 것들로 충분해
나는 알기 위해 듣고 싶지 않아
충분해 모든 것이 충분해
나는 내 마지막 충분함을 말할 거야
내 입을 흙으로 채울 거야
내 이빨을 갈거야
나는 머릿속까지 취한 자를 입 닥치게 할 거야
단호히 입 닥치게 할 거야
나는 내 모습 이대로 서 있을거야
철저함도 혹은 왕관도 없이
그냥 나 자신에게 기댈거야
나 자신의 재능에 기댈거야
나는 그대 안에 달려든 말뚝이 될 거야
그대 안에 달려드는 흥을 깨는 자가 될 거야
그대 안에 달려든 얼간이가 될 거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지
그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13.
괴짜여 나를 가지고 놀지마
그대는 그대의 스카프안에 칼을 숨기고 있었지
그러고는 선을 넘어와 내게 딴지를 걸었어
그대는 게임을 망쳤지
그대는 내 천국들이 뒤집어지기를 바랐어
태양이 내 머리를 깨뜨리기를 바랐지
내 넝마조각들이 다 흩어지기를 바랐어
다른 괴짜를 절대 놀리지 마
그냥 내 넝마조각들을 돌려줘
그러면 나도 그대의 것을 돌려줄게
ARTICLE
절름발이 늑대에게 경의를/ 2006.12.26 초판 /바스코 포파 시, 오민석옮김
문학동네 세계문학시리즈. 8500원
한 권의 책을 가지게 되어서 오래도록 벅찰 수 있다는 것, 보람찬 일이지.
http://blog.daum.net/binaida01/6214393
혹, 지금이 보람찬 것은 언젠가 그날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의 주소는 그 날이다.
테드휴즈의 책을 읽다가 인용문으로 나왔던 유고의 시인 '바스코 포파'를 찾았었다.
인터넷의 여러곳을 흘러다니며 건지려 애을 썼지만, 두 편 밖에는 찾아내지 못했다.
그것이 아쉬우면서도 그 두편의 시가 참 소중했고, 한 켠에 묻어두었다.
멀리 '이방'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나라의 시인을 그리워했었다.
어제,
토요일이라 대학로 서점 이음아트를 들러 조용히 책을 둘러보며 헌책 몇 권을 계산해놓고 행복했었다.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를 하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진열된 책들 사이에서 몇 개의 활자가 내게 마치 별처럼 반짝였다.
'바스코 포파'
지금보아도 참 조그만 글자인데, 그 글자가 어떻게 눈이 띄었을까?
신기할 뿐이다. 역시 '그 곳'에는 '그것'이 있다.
점프!
헉!
이게 누구야!
이사람이 그 사람맞어?
첫장을 열어보았다. "작은 상자" 다. 맞다.
도대체 이게 언제 나온거야.
2006.12.26이다. 맙소사!
이 사람의 시가 우리나라에 시집으로 처음 소개된 것이다.
문학동네, 뭐야. 고맙잖아. 누가 이 사람의 시집을 낼 생각을 한 건지. 만나서 고맙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다시 생각해도 흥분된다. 차분히.
바스코 포파.. 1922-1991. 그는 세르비아어로 시를 쓰는 사람이다.
이 책은 그의 6권의 시집 중 골라낸 영문시선집을 다시 우리말로 중역한 것이란다.
그의 사회주의적 성향이나 동구권의 낯섬이 아마 번역과정에서 많이 무디어갔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의 여러 시편들이 어감이나 언어의 섬세함에 주력한 시라기보다는
겹겹이 쌓인 뜻을 찾아내는데 더 큰 매력이 있다는 시점에서 본다면.. 이해하고 용서할 일이다.
무엇보다도 번역하신 오민석이라는 분이 이 점에 대해서 많은 신경을 썼다는 느낌을 받았으므로...
그리고 바스코 포파라는 시인을 사랑하는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행복하다.
찾아도, 보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던 저 멀리 어느 세계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가 평생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살았던지 좀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이 보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게 된 행복감에 이틀째 푹 젖어 있다.
그리워 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할 일도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워 하는 것들을 간절히 소원하면 언제가는 만나게 되어있을테니까 말이다.
앞으로도 그리울 것들이 점점 많아질 것 같다.
그리움 뒤에 오는 행복감을 맛보았다. 그 짜릿함을 맛보아 버렸다.
그럼, 새로이 읽은 시를 골라본다.
'상자시리즈'에서 그는 우주나 인류나 세상을 작은 상자에 넣기도 하고
삶의 여러가지 모습, 즉 현실, 운명, 꿈 그런 것들을 상자의 안밖에다 두고 넣었다 뺐다하면서
인간을 위로한다.
그리고 '넝마연작시'에서는 너라고 부르는 것,
그것을 절대자인 신,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정말 그대, 어쩌면 이기지못하는 자기 자신.... 과
줄다리기를 하면서 이기고 넘고자 애를 쓰는 인간의 모습을 보인다.
바벨탑이 생각난다.
하늘과 닿지 않는 바벨탑이 아닌 그즈음 어디까지는 가보았던 인간의 모습.... 그것.
아직 몇 번을 읽지는 못했지만,
모더니즘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읽을 때마다 암호를 해독하는 듯한,
아님 암호가 내 눈앞에서 슬슬 풀리는 느낌,
아님 암호가 틀렸음을 아는 절망이 모두 함께 오는...
그것 그 자체가 나에게 행복이 되는, 그런 시편들이다.
파스코 포파는 이 시집에서도 나왔듯이 연작시를 많이 쓴 시인이라 한다.
몇 편 짧은 시를 올리거나 연작시의 일부를 실으려다,
그의 시를 찾아 헤매던 기억이 있어 단 한사람이라도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을까하여,
정말 좀 길지만 '내 넝마조각들을 돌려다오'는 전문을 올린다.
어쩌면 이 시는 낱낱이 한 편 씩을 떼어놓고 읽는 것이 지금은 더 좋다는 생각이다.
작은 상자를 세낸 사람들
바스코 포파
작은 상자 안에
돌을 던져 넣으라
그러면 새 한 마리를 꺼낼 수 있으리
그대의 그림자를 던져넣으라
그러면 행복의 셔츠를 꺼낼 수 있으리
그대 아버지의 뿌리를 던져넣으라
그러면 우주의 축을 꺼낼 수 있으리
작은 상자는 그대를 위하여 일한다
작은 상자 안에
쥐를 한 마리 던져 넣으라
그러면 흔들리는 언덕을 꺼낼 수 있으리
그대 어머니의 진주를 던져넣으라
그러면 영생의 성배를 꺼낼 수 있으리
그대의 머리를 던져넣으라
그러면 두 머리를 꺼낼 수 있으리
작은 상자는 그대를 위하여 일한다.
내 넝마조각들을 돌려다오
바스코 포파
그저 내 머리로 뛰어들어다오
내 생각이 너의 뺨을 더 잘 할퀼 수 있도록
그저 내 앞으로 나와주오
내 눈이 너를 더 잘 물 수 있도록
그저 너의 큰 입을 열어다오
내 침묵이 너의 턱을 더 잘 깨부술수 있도록
그저 제가 누구인지 상기시켜다오
내 기억이 너의 발밑에 구멍을
더 잘 팔 수 있도록
이것이 우리 사이의 현실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