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환] 幸福
幸福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
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
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
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방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 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 유치환시인의 행복' 참 오래간만에 전문을 본다.
1974년판 민음사에서 발간했던 세계시인선 21번 '청마시선' 중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 이 시가 있다.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라는 구절때문에 더욱 애잔하다.
행복이라는 것.
사랑과 행복이라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삶에 행복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행복한 삶에 사랑이 없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행복을 원한다면 사랑을 해야하는 것이다.
'나 그대를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시인은 진정 사랑을 한 사람이구나.
사랑을 한다는 것은 사랑의 상대자와는 상관이 없는 나의 몫인것이다.
사랑을 지키는 것도 놓는 것도 나의 몫이다.
그에게 감사한 것은 사랑하였으므로 내가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시가 참 좋다.
진정 시가 참 좋다.
오래된 그 분들의 시들이 참 좋다.
낡지 않아서 바래지 않는 시이다. 언제나 처음 그대로의 모습을 가진 시들이다.
죽어도 사는 詩, 오늘 청마 유치환의 시집을 골라 들었던 나를 사랑한다.
청마 유치환시인은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다가
내가 태어나기 꼭 한 달 전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