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기억의 집
기억의 집
최승자
그 많은 좌측과 우측을 돌아
나는 약속의 땅에
다다르지 못했다.
도처에서 물과 바람이 새는
허공에 방에 누워, "내게 다오,
그 증오의 손길을, 복수의 꽃잎을"
노래하던 그 여자도 오래 전에
재가 되어 부스러져내렸다.
그리하여, 이것은 무엇인가.
내 운명인가, 나의 꿈인가,
운명이란 스스로 꾸는 꿈의 다른 이름인가.
기억의 집에는 늘 불안한 바람이 삐걱이고
기억의 집에는 늘 불요불급한
슬픔의 세간살이들이 넘치고,
살아있음의 내 나날위에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인가.
자세히 보면 고요히 흔들리는 벽,
더 자세히보면 고요히 갈라지는 벽,
그 속에서 소리 없이 살고 있는 이들의 그림자,
혹은 긴 한숨소리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인가.
일찍이 나 그들 중의 하나였으며
지금도 하나이지만,
잠시 눈 감으면 다시 닫히는 벽,
다시 갇히는 사람들.
갇히는 것도 나이지만,
벽의 안쪽도 벽, 벽의 바깥도 벽이지만,
내가 바라보는 이 세계.
벽이 꾸는 꿈,
저무는 어디선가
굶주린 그리운 눈동자들이 피어나고
한평생의 꿈이 먼 별처럼
결빙해가는 창가에서
나는 다시 한번
아버지의 나라
그 물빛 흔들리는 강가에 다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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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따라가본다.
찬찬히 시인의 마음 길을 따라 가 보려 한다.
그 많은 좌측과 우측을 돌아
나는 약속의 땅에
다다르지 못했다.
아쉬움이다. 시인은 과거에서 연결되는 현재에 대해 뱅글뱅글 돌고 있다고 한다. 가고 있으나 다다르지 못하는 아쉬움이다.
도처에서 물과 바람이 새는
허공에 방에 누워, "내게 다오,
그 증오의 손길을, 복수의 꽃잎을"
노래하던 그 여자도 오래 전에
재가 되어 부스러져내렸다.
허공에 누워... 안착하지 못하고 붕 떠, 누워서 보는 세상이다. 정지된 세상? 아니 가두어진 세상에 누워 부식되고 있다. 원망이나 증오는 삶을 빠르게 부식시킨다. 그것이 증오라하더라도 너무 오래된 것은 삭는다. 힘을 잃는다.
그리하여, 이것은 무엇인가.
내 운명인가, 나의 꿈인가,
운명이란 스스로 꾸는 꿈의 다른 이름인가.
움직이지 못하는 것, 이것을 운명이라고 말한다. 한번도 이런 꿈을 꾼 적이 없으나, 지금 살아가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미래라는 것이 있을 리 없다면, 그럼 현재가 마지막 꿈이다. 이루지 못한 꿈을 꿀 수 있는 순간이라면 지금 이것이 운명.. 이런 운명을 꿈꾼 적이 없다. 삭아내리는 꿈을 꾼 적이 없다.
기억의 집에는 늘 불안한 바람이 삐걱이고
기억의 집에는 늘 불요불급한
슬픔의 세간살이들이 넘치고,
현재가 나에게 아무런 희망이 되지 않는다면, 과거 어느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출발점이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곳은 기억이라는 방편으로 도달할 수 있다. 기억은 나(이제 시인이 아니라 나)의 어디에 고이 모셔둔 것 같다. 그 곳을 찾아간다. 그 곳은 기억이라는 것을 만져보지도 보듬어주지도 않았다. 기억의 집도 바람이 불고 나처럼 부스러져 가고 있다. 현재가 아니라면, 꿈을 꿀 수 조차 없다면 기억밖에는 없다. 살려야 한다. 살아나야 한다.
살아있음의 내 나날위에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인가.
어쩌면 기억이라는 것도 나와 마찬가지이다. 가두어져 있긴, 볼모로 잡혀있긴...... 지금 정지된 화면인 기억, 기억을 연장시키려면, 기억을 회생시켜 현재와의 끈을 붙들어두자면 무엇을 더 했어야 한단 말인가. 무엇을 빼내버려야 한단 말인가. 기억에서 나를 꺼내 지금의 나를 살리고 싶다. 뭘 넣고 뭘 빼야 꿈이 이루어지고 운명이라는 수레는 계속 굴러갈 수 있는 것인가.
자세히 보면 고요히 흔들리는 벽,
더 자세히보면 고요히 갈라지는 벽,
그 속에서 소리 없이 살고 있는 이들의 그림자,
혹은 긴 한숨소리
나는 지금 움직이지 못하나, 기억의 집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간절히 빌면 이루어지는 것인가. 난 나의 기억이 옷을 입기를 바란다. 군살을 빼고 멋진 실루엣을 뽐내어 주길 바란다. 이제 우리의 꿈이 살아나려 한다. 아무도 몰래, 너와 나만이 눈치챈다. 나와 나의 나, 벽 속에 숨어있던 나. 죽지 않는다.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난 죽을 수 없다. 죽어라고 죽어라고 매일밤 빌어도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한 난 질기게 살아있다. 그리고 꿈틀거린다.
무엇을 더 보태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인가.
일찍이 나 그들 중의 하나였으며
지금도 하나이지만,
잠시 눈 감으면 다시 닫히는 벽,
다시 갇히는 사람들.
갇히는 것도 나이지만,
벽의 안쪽도 벽, 벽의 바깥도 벽이지만,
나의 기억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억이 움직이면서 나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눈이 앞을 바라본다. 나의 주위를 살핀다. 여전히 벽들로 싸여있다. 이제 그 곳이 벽임을 안다. 내 안도 바깥도 벽임을 안다.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 주위를 싸고 있는 것,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움직이지 못할 때 난 나를 싸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관심없었다. 다만 난 울고 소리치고 나를 뜯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쳐 부서졌다. 지금 기억들이 살아나 나의 눈을 뜨게 했다. 나를 가두고 있는 것은 벽이다. 난 벽안에 갇혀있다.
내가 바라보는 이 세계.
벽이 꾸는 꿈,
가두었던 곳, 감옥. 벽이다. 벽이 움직이고 갈라지기 시작한다. 기억이라는 힘을 빌었다. 얼마전까지 벽은 나를 가두던 경계이다. 단절이다. 벽이 갈라지면서 꿈틀되면서 희망이 된다. 갈라진 벽은 살아오면서 만났던 어떤 것보다도 지금으로서는 희망이 된다. 깨지고 부서지는 것이 희망이 된다, 그 틈으로 보일 것들, 그 틈으로 보여줄 것들, 그것을 꿈이라고 말한다. 갇혀 본 사람은 안다. 그저 세상이 꿈이다.
저무는 어디선가
굶주린 그리운 눈동자들이 피어나고
한평생의 꿈이 먼 별처럼
결빙해가는 창가에서
나는 다시 한번
벽은 창이 되고, 눈동자는 꽃이 되고, 꿈은 별이 되고, 무너지고 금간 벽은 창이 되었다. 아직 바깥세상에 나갈 자신은 없다. 다만 창을 통해 바깥을 본다. 나에게 세상은 손만 대면 얼어붙어버리는, 살갗을 뜯어버렸다. 창이 있어 세상을 감지할 수 있다. 좀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창가에 서서 세상에 무엇이 살고 있는 지, 어떻게 움직이는 지, 난 창을 통해서 볼 것이다. 나는 부서져도 세상에 대한 꿈은 부서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것이었다.
아버지의 나라
그 물빛 흔들리는 강가에 다다르고 싶다.
아버지, 그 분의 나라.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다. 기껏 세상을 봤다. 보고만 있다. 아직 아버지의 세상을 만나고 싶지는 않다. 시인의 말을 들으며 시인의 길을 쫓았는데 지금 아버지의 나를 찾는 것은 아니다. 나 좀 더 사람의 나라에 있어보자. 기억이 흔들리고, 기억의 감옥에 금이 갔는데, 조금만 더 있으면 내게 무슨 세상이 보여줄 지 조금만 더 기다리자. 마음이 변했다. 처음 마음이야 아버지의 나라로 가는 것이 나의 소원이었다. 하지만 시인을 따라오다 보니 마음이 변했다. 시인 혼자 보낸다. 난 아직 여기 더 있을 것이다.
최승자 시인의 '기억의 집'이라는 시를 읽는다.
시가 어둡다.
그리고 기억의 집과 시인은 마치 동반자살이라도 할 태세이다. 난 한강대교에서 투신자살이라도 하려는 둘의 발목을 잡고 떠든 것 같다. 그런데 떠들다보니, 떠들다보니, 나 또한 그 곳에 몸을 던지러 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떠들다보니, 난 그들이 죽는 것도 내가 죽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둠의 시를 읽으며, 내가 얼마나 빛을 원하는지, 빛의 길을 따라가려고 합리화시키고 있는지, 말을 만들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때로 지독한 어둠은 빛을 몰고 온다.
천천히 가겠다 해놓고 .....한달음에 뛰었더니 숨이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