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비(發飛) 전체보기2197 [바로 전] 혹은 [끊임없이 낯선 나]를 위하여 -잠시 딴 소리부터- 우리집은 그 당시 지방소도시 중 제법 큰 안동. 위에 오빠, 아래 남동생. 아버지는 공립 중고등학교 국어선생님. 이런 나열만으로도 뭔가 안정적이고 평화롭다. 그중 내게 가장 봄날의 햇살 같은 기억은 '탁구'에 관한 것이다. 아버지는 운동을 좋아하셔서 특히 테니스와 탁구를 잘 치셔서 전국 교직원 체육대회에서 입상도 하신 것 같다. 오빠와 남동생은 그 당시 남학생들처럼 탁구를 잘 쳤지만 나는 못쳤다. 휴일에 아버지께서 근무하는 학교에 가서 시멘트 탁구대에서 남자들 셋이서 탁구를 치면 나는 늘 구경꾼이었다. 절대 끼워주지 않았다. 하루는 울면서 조른 적이 있었는데, 셋이서 네트만 넘기는 것을 배워오면 끼워준다고 했다. 나는 엄마를 졸라 탁구체육관에 등록을 했지만, 고입 체력장에서 전교생 .. 2024. 1. 12. [선택]의 필수 조건은 [자각], 그리고 [자유]라는 생각을 했다 -잠시 딴 소리부터- 고향이 안동이라고 말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데, 고향으로의 귀향은 더 낯설다. 이미 고향으로 돌아왔음에도. 흔히 티비에 나오는 논과 밭이 있고, 그 동네 토박이들이 있고, 늘 그곳에서 살고 있는 일가친척이 있는 곳이 아니라 그럴 수 있다. 내가 자란 안동이라는 곳은, 논밭이 있는 시골이 아니라 지방중소도시였으므로 일년에 한두번 들렀지만, 그때마다 그 변화를 봐왔지만 실제는 상상이상이다. 안동이 제법 관광지로 자리잡아서인지 외부사람들이 오가는 곳은 정리가 된 듯 보이지만 내가 살던 구도심(?)은 폐허에 가까운 모습으로 방치되었고, 신도심은 사람들의 욕심들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기형적으로 큰 거대한 간판과 무질서해보이는 경계로 다음 블럭이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부대.. 2024. 1. 11. [습관]에 대해, 한번 해보자 파스칼은 '습관'을 '제 2의 천성'이라고 말하고 '제 1의 천성'을 파괴한다고 말했다. -잠시 딴 소리부터- 어제는 내 방 정리를 다시 했다. 다른 짐 정리는 대충 끝났는데, 내 방 하나에 내 짐이 들어가야 하는 건 정말 무리여서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책들은 책장에 정리를 했는데, 높은 책장은 동네 목공방을 수소문해서 서울집의 책 선반으로 쓰던 긴 널판지와 아버지 책장을 분해하고 남은 널판재를 이용해 리싸이클링을 했다. 확 티가 나지 않지만 이야기가 있는 책장이 되었다. 낮은 책장은 아버지가 25년전 이 아파트로 올때 서재방에 맞춰 짠 책장이다. 나머지 자주 쓰는 물건들은 4단 서랍장에 한 칸은 화장품, 두번째 칸은 문구, 세번째 칸은 중요한 서류들이나 안경, 네번째 칸은 바로 입는 속옷과 양말, 집.. 2024. 1. 6. [정호승] 수선화에게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네이버 사전을 찾아봤다. 고독: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외로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비슷한데 다르다. 사전적 의미로는 '고독'은 마음이 만들어낸 것일 수 있고, '외로움'은 물리적으로 그 근거가 있는 듯 하다. '고독'은 나의 마음.. 2024. 1. 4. [새해] 인사 2024년 새해다. 2023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했어야 하나. 2023년 내내, 방울방울 물이 떨어져 공기 중으로 휘발되거나 땅으로 스며들거나 하지 않고, 내 곁 어느 항아리에 차곡차곡 쌓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 물방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른다. 그 물방울들이 무의식 속의 생각인건지, 마음인건지, 의지인건지, 운명인건지, 알 수 없으나 2023년 12월 중순의 어느 날 긴 서울생활을 접고 엄마의 집인 안동으로 내려왔다.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았던 결정이었다. 비극이 포함된 이야기가 이 곳에서는 여전히 실화인 채로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나는 평행우주처럼 먼 별 어디에 있다가 마치 이어진 듯 끊어진 듯 묘한 느낌으로 그 때 그 시간과 바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좀 .. 2024. 1. 1. [책장파먹기] 청춘의 민낯-내 몸, 내 시간의 주인 되지 못하는 슬픔 2014년 부터 4년 반 대학에서 출판기획 강의를 했다. 강의를 시작한 첫해, 야심차게 학생들의 책을 만들 수 있는 기획을 완성하고, 한 학기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원고가 완성이 되었고 선배의 출판사에서 책이 나왔다. 이 책이 출판과정에 들어갈 무렵 다니던 출판사 일로 멘붕이 되었고 사표를 된 뒤 산티아고를 걷기 위해 한국을 떠났다. 출판과정을 함께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돌아와서도 이 책을 정독할 기획을 놓쳐버렸다. 책장파먹기, 이사를 하고 책들을 정리하면서 이 책들을 모두 읽으리라 결심했다. 그 첫번째 책이 이다. 내 몸, 내 시간의 주인 되지 못한 슬픔(부제)는 수강생 중 한 명이 블로그에 적은 글의 제목이었다. 20대의 멋진 통찰이다. #돌팔이 상담사는 버려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다들 힘.. 2023. 12. 23. [발비詩] 이른 아침 집을 나서며, 안녕 이른 아침 집을 나서며, 안녕 오래된 일기장 속에 꽂혀있는 나뭇잎에 인사를 한다. 안녕 발밑에서 잠든 강아지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남향집 거실을 가득 채운 아침햇살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현관문 앞에 놓인 택배상자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1층 엘리베이터 앞으로 굴러들어온 지난 가을 낙엽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보도블럭 틈을 밀고 올라온 민들레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핸들에 두 손을 올리고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길가에 굴러다니는 과자봉지들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강변으로 내려가는 언덕길에 박힌 작은 돌멩이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억새들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귀밑 머리카락 사이에 맴도는 바람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 강물에 뿌려진.. 2023. 12. 23. [용서]의 계절 나는 엄마를 용서할 수 있을까?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엄마'와 '용서'라는 단어때문에 깊은 절망속에 빠져있다. 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불가항력을 느낀다. 그럴 수 있을 것이라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엄마에 대해서도 불가항력을 느낀다.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았던 캔디가 생각난다. 생이 끝나감을 느낄 때, 나는 깔끔하게 정리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딴 이야기- 이혼을 한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그때 엄마로부터도 그의 부모님으로부터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 그 사람을 용서했다. 어쩌면 용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해했다. 비록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양쪽 부모님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것이 먼저이고, 나는 무기력했으므로, 지금 나는 그가 이해가 된다. .. 2023. 12. 23. [귀향] 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수십년만에 귀향을 한다. 귀향이라기보다 엄마와 살게 되었다. 학창시절 이후 엄마와 같이 산 적이 없는데 같이 살게 되었다. 오늘은 사람들에게 엄마한테 간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진아는 ... 한 뒤에 언니가 서울에 없다고? ... 했다. 언니는 늘 곁에 있는 사람이지 했다. 꽤 오랫동안 일했던 회사 사장님도 ... 이상하네. 기분이.. 했다 그래도 서울 있는 거랑 엄청 다르네 했다. 그렇게 하나 둘 말을 시작하자, 나도 기분이 이상했다. 그들도 내가 서울에 있거니 했겠지만, 나도 그들이 내 곁에 있겠거니 한거니까. 나도 이제 그들이 보고 싶을 때 '보자'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된거다. 나의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에 있고, 귀향이라고 말했지만 고향은 엄마 빼고는 모두 낯선 곳이 되었다. 어느 날 내 뿌.. 2023. 11. 10. 이전 1 2 3 4 5 6 7 ··· 2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