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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609

On the road-말 길 위에서 하는 말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하는 말은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침묵했다. 말들은 가슴 속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뒤엉킨다. 가슴이 아팠다.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순서없이 내보내고 싶었다. 문득 탈무드에서 읽은 말을 되뇌이며 가.. 2018. 7. 19.
폭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해라. 넘어지면 안된다. 비가 많이 온다잖아." 엄마는 비가 와 더 바쁜 아침 출근길에 말했다. 알았어, 하고 핸펀을 주머니에 넣었다. 비가 오면, 미끄러지지. 나는 비가 오지 않아도 잘 넘어지지. 다리도 부러지고, 발가락도 부러진 적이 있었다. 그걸 아는 엄마는 빗.. 2018. 5. 17.
포옹 3년 전 이 맘때,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을 갔었다. 미술관을 들어갈 때 도로 곁 인도에서 한 커플의 연인들이 포옹을 한 채 키스를 하고 있었다. 프라도미술관을 돌고 나올 때까지 그들은 그 모양 그대로 여전히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고 있었다. 아마 두 시간. 그들의 포옹은 길었고 캐.. 2018. 5. 14.
세상 믿지 못할 것이 내 마음 8시 25분 현관을 나와서 8시 31분 9호선급행전철을 타고8시 45분 2호선을 갈아타고8시 50분 콤포즈에서 커피를 사고8시 58분 출근지문을 찍고8시 59분 컴퓨터를 부팅시키고,9시 탕비실에 가 텀블러를 씻고 따뜻한 물을 받아 자리에 앉는다 이 35분간은 지난 가을 이사를 한 후 평일이라면 출장 .. 2018. 4. 26.
오는 이가 그립다 친구가 집으로 온다고 했다. 일에 사로잡혀 있느라 꼼짝 않던 터였다. 혼잣말을 자꾸 해 버릇 했더니 시도 때도 없이 혼잣말을 해 민망할 지경이다. 친구가 잠깐 놀러 온다고 했다. 가양대교를 건너고 있다고 하고, 가양역 교차로에 있다고 메시지가 왔다. 나는, 오는 이가 그립다. 하고 답.. 2018. 4. 23.
방문 아침에 출근을 하자마자 후배들이 어제는 즐거웠다며 메신저를 보내왔다. 나도 즐거웠다고, 어제는 잠을 잘 잤다고, 그러니 또 놀러오라고 했다. 어제 회사 후배들이 집에 놀러왔었다. 6시 칼퇴근을 하고, 셋이서 택시를 타고, 집 근처로 와 혼밥을 하던 단골집에서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 2018. 3. 16.
생명 아침에 어떤 이의 긴 문장 속에 '생명정치'라는 말을 보았고, 가슴 속에 맴맴 떠나지 않았다. 생명: 생물이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는 힘이다. 모든 생물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속성이다. 어느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정확하게 정의하기는 매우 어렵다. 때에 따라서는 .. 2018. 3. 9.
발우 지난 주 동생과 친척 동생을 집으로 초대했었다. 간만에 누군가 집에 온 거라 당황이 되었는지, 컵과 유리캔들을 떨어뜨려 깨버렸다. 바닥을 타일로 한다고 했을 때, 친구는 그릇을 떨어뜨리는 순간 아작이 나는데 괜찮겠냐고, 너 같은 가시손이.. 그랬었다. 정말 아작이 나더라. 치우다가.. 2018. 2. 6.
[아버지訃告] 다른 종류의 죽음 피로에 풀리지 않던 몸이 사우나에 가서 세신사에게 몸을 맡기면 마사지를 받은 것처럼 몸이 개운해진다. 새벽이 되어서야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몸이 영 말이 아니었다. 이사를 하고나서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사우나에 자주 간다. -잠시 딴 소리- 흔히 말하는 체질이 바뀐 것인지 나도.. 2017.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