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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코르도바] 에서 노루벌을, 착한아이가 되길

by 발비(發飛) 2016. 12. 13.

넌 혹시 노루벌을 들어봤는지.

 

내 몸에 노루벌을 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그 뒤로도 스페인을 여행할 때 알베르게 혹은 호스텔의 도미토리에서 세 달 넘게 지냈다. 알베르게건 호스텔이건 많은 사람들이 한 방에서 잠을 자고 그 곳에서 준비해 주는 침구를 덮고 자는데, 희한하게 나는 계속 빈대 혹은 이름도 모를 벌레에게 물렸다. 한국에서도 여러사람이 함께 있는데로 꼭 나만 모기에 물리니까 어느 정도 익숙한데, 빈대는 이야기가 다르다. 

 

빈대는 옷 속이나 짐 속에는 숨어있다가 틈만 나면 자리를 옮겨 그 생명도 질겨서 전염병 저리가라다. 심지어 스페인의 한인 숙소에서는 혹시 빈대를 데리고 올까봐 산티아고에서 온 순례자를 받지 않는다. 빈대에 물린 자리가 참기 힘들 정도로 가려웠지만, 그보다 빈대에 물린 자국이 남아있는 손을 누군가 볼까봐 그게 더 힘들었다. 아무튼 나는 산티아고의 프랑스 루트를 벗어나 북쪽 루트의 중간지점인 야네스로 루트를 옮기고, 그곳 알베르게에 있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세탁기에 옷이며 신발이며,배낭이며 가진 모든 것들을 세 번, 네 번 돌리고, 고열의 건조기에 거의 삼십분을 돌리고, 마트에서 지퍼팩에 옷이며, 양말이며 모두 따로따로 밀봉한 다음에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날은 좀 편히 잔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후로도 나는 또 무엇인가에 물렸고, 그것이 빈대인지 모기인지는 모른다. 어느 날에는 부킹닷컴의 수많은 리뷰에 엄청 깨끗하다는 포르토의 작은 호텔에 묵었고, 딱 보기에도 무척이나 깨끗한 곳이었는데, 자다가 벽이 다리가 닫았다고 느끼는 순간, 몸이 스멀거리더니 다리가 또 가려웠다. 신경과민이라고 생각하려다가도 올록볼록 빨갛게 올라오는 것을 보면 대체 뭐냐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때 내 몸에 노루벌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노루벌을 알게 된 것은 스무살 쯤인데 나름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때 처음 시를 썼다. 노루벌에 관한 시. 정확히 말하자면 노루에 관한 시였다. 그 뒤에 난 누군가의 입을 통해 '노루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지. 스무 살 때까지 노루는 평화로운 생명체였지만, 노루벌을 알고 난 뒤부터는 절대 아니야. 차라리 반대야. 지옥같은 거지.

 

노루벌은 노루의 피부 안쪽에 알을 낳고, 피부 속에서 애벌레가 되고, 성충이 될 때가지 노루의 가죽 속에 있다가 성충이 되어서야 일제히 노루의 가죽을 뚫고 밖으로 나온다고 해. 곤충들은 알을 낳으면 하나만 낳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수십 개를 낳으니 수십 마리의 성충이 된 벌이 노루의 살가죽을 뚫고 세상으로 나오는 거지. 개미도 아니고 거미도 아니고 나비도 아니고 뾰족한 가시가 있어 거기에 쏘이면 치명적인 벌이 일제히 노루의 살가죽을 뚫고 나온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해. 내 기억으로는 고통을 견디다 못해 죽는 노루도 있다고 했다. 죽은 노루는 노루벌이 뚫고 나온 수십개의 구멍으로 피가 나겠지.

 

그때도 지금도 나는 벌의 생명력보다는 노루의 고통이 신경 쓰여. 벌을 품고 있었다고 노루가 한순간도 평화롭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겠지만, 고통은 고통이니까. 참는다고 고통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고통은 고통의 질량이 있고, 누구에게나 같은 고통이니까, 참고 견디고 소리를 지른다. 노루는 그러고 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노루처럼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지 겉으로는 평화로이 웃으며, 누구나 부러워할 여행을 다니며 세상 편하게 사는 여자다. 내 몸에 노루벌이 살고 있지만 말이다. 나는 내 몸에 깃들어 살고 있는 노루벌이 주는 고통과 아무도 몰래 싸우고 있다. 몸속에서 스멀거리며, 때로 제 몸을 뚫고 나오는 노루벌을 보내느라, 노루벌이 뚫고 나간 상처를 회복하느라 정신의 반쯤은 나간 상태다. 그러면서 웃습니다. 그러면서 일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보면 또 웃깁니다. 다른 사람들 또한 노루벌을 키우지 않겠느냐 말씀하고 싶으시다면 선생님은 인간적이지 않습니다. 나는 제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코르도바호스텔에서 메리트라는 여자를 만났습니다. 호스텔의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들어갔는데, 사람은 없고 한 테이블 위에 목탄으로 그린 드로잉이 있었습니다. 몸을 조금 틀고 있는 여자를 그린 것인데, 눈이 거의 보이지 않음에도 단박에 엄청 센 여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 자신을 그린 것이겠지요. 곧 그림의 주인이 왔는데 제 옆 침대 층을 쓰고 있는 여자였습니다. 안에 수영복을 입고, 그 수영복이 훤히 비치는 원피스를 입고 호스텔에서 생활하고 있는 여자인데, 나는 그 여자가 호스텔 밖을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항상 그녀의 2층 침대에 있거나, 거실 테이블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했습니다. 대부분 침대에 있었지요. 아무튼 그녀의 이름은 메리트이고, 그녀는 겨울에는 보드 강사를 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그림을 그린다고 했습니다. 지금 그녀는 나가고 없습니다. 아마 이 호스텔의 관리를 맡고 있는 착한 남자와 함께 나간 것 같습니다. 남자는 착하고 친절한데 원래 타라고나 사람이 아니고, 이 곳에 여행을 왔다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호스텔 일을 도우며 살고 있는 머리카락이 빨간 사람입니다. 좀 전에는 어울리지 않게 크게 노래를 부르며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카운터를 맡기겠다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는 나갔습니다. 제 생각에는 둘은 너무 다른데, 잘 어울렸고 오늘 밤 행복한 시간을 가질 것 같습니다.

그 여자 메리트는 내가 그녀의 그림에 관심을 보이자 자신이 그린 채색된 그림까지 보여주었습니다. 그 중에 추상화에 가까운 그림이 있는데, 거기에 스페인말로 어떤 글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녀는 영어로 직역해주었는데, 나는 백패커이다. 무거운 배낭을 지고 걸어가지만 한걸음씩 걸으면 가는 것이다. 라는 그런 뜻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독려하려고 애를 많이 쓰는 모양입니다. 그러면서 3년 정도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욕망만 강한 시간이 있었는데, 약이 많이 올랐었다고 합니다. 메리트는 영어가 짧은 저를 위해 마치 퍼포먼스를 하는 것처럼 온 몸으로 말을 했는데,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땅에 내려놓는 포즈를 취했습니다. 영어로 표현하기도 힘들지만, 제가 알아듣기 힘들겠다고 생각한 것인지, 아무튼 그 몸 짓은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말을 하는 듯 했습니다. 나는 알아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을 낮게 모두 내려놓으니 그림을 다시 그릴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몇 살쯤 되었을까요? 스물 몇살? 절대 서른은 넘지 않은 나이로 보였습니다. 제가 몇 살로 보였을까요? 저더러 무엇을 하든 그렇게 자신을 내려 놓으면 될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몸을 바닥에 눕혔습니다. 나는 착한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들었다는 시늉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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