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백동산에서 먼물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이었다.
친구 중 한 명이 이선희의 '인연'을 흥얼거렸다.
그 첫소절이 끝날즈음 눈물이 뚝 떨어졌다.
'몰랐다'
'지나갔다'
울컥한 마음을 숨기기 위해, 그 노래를 흥얼거리던 친구에게 '인연'은 그 친구도 아는 K가 잘 부르는 노래라고 말했다.
'그래?'
10년도 훨씬 전에 K의 오빠가 갑자기 아팠고, 세상을 떠났다.
내 아픔에 빠져,
K의 오빠가 아프고, 세상을 떠나가는 시간을 옆에서 지키던 그 친구 K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했다.
한번 등을 토닥여준 기억도
눈물을 받아준 기억도 없다.
나는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이제와서 알 길이 없다.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늘 내 곁에서 나를 지켜준 친구의 가장 큰 슬픔이었을 그 시간에 대해
나는 아무런 기억조차 없다는 것을 동백동산 좁은 숲길에서 알아챘다.
'인연'이라는 노래를 듣고서야,
K가 울먹이며 불렀던 그 시간의 한 자락이 떠올랐다.
몰랐다.
지나갔다.
동백동산에서 돌아온 그 날 밤,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의 여행이었기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친구가 내게 말했다.
"참 오랜만인데, 너가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고,
온전히 잘 살아줘서 참 고마워. 대견해."
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울컥했다.
친구의 위로와 격려때문이 아니라 친구 K에 대한 미안함으로.
"K가 늘 지켜줬어."
라고 대답했다.
한결같이 늘 지켜줬다.
단언컨데 K가 아니었으면....., 미안함으로 나는 지금도 말을 이을 수 없다.
이선희의 '인연'을 부르며 목이 메였던 친구를 기억할 뿐,
그때 온몸이 저렸을 K, 그 때 그 시간을 이제야 생각한다.
'몰랐다'
'지나갔다'
동백동산의 좁고 긴 숲길을 지나, 세상과 멀리 있어서 '먼물깍'이라는 이름 붙여진 연못에 발을 담그고 앉았다.
꽤 먼거리에서 새소리와 함께 이선희가 부르는 '인연'이 들린다.
'인연'을 흥얼거리던 친구는 사람들이 없는 틈을 스피커로 듣는 듯 했다.
괜히, 고요한 연못에 발을 휘저어 물결을 만들어본다.
고요하고 깊은 산속에 물결이 크게 퍼졌다.
-제주 동백동산 먼물깍, 2019.06.01
인연
이선희 작사 작곡
약속해요 이순간이 다 지나고
다시 보게 되는 그날
모든걸 버리고 그대 곁에 서서
남은 길을 가리란 걸
인연이라고 하죠 거부할 수가 없죠
내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고달픈 삶의 길에 당신은 선물인 걸
이 사랑이 녹슬지 않도록 늘 닦아 비출게요
취한듯 만남은 짧았지만 빗장 열어
자리했죠 맺지 못한대도
후회하진 않죠 영원한건 없으니까
운명이라고 하죠 거부할수가 없죠
내생에 이처럼 아름다운 날 또 다시
올 수 있을까요
하고픈 말 많지만 당신은 아실테죠
먼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
이생에 못다한 사랑 이생에 못한 인연
먼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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