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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3rd-제주 삼합

by 발비(發飛) 2019. 6. 5.



제주를 다녀왔다. 

올해만 세번째 갔던 2박3일 제주여행이었다. 


첫번째는 엄마와 동생과 조카, 넷이서 한 첫 여행이었고, 

두번째 제주는 오래고도 오랜, 늘 만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한 첫 여행이었고, 

세번째 제주는 오래고도 오랜, 아주 가끔 만나는 친구 세명과 함께 한, 두 번째 여행이었다. 

아마도 30년전쯤 학창시절에 함께 했던 강릉여행 이후 두 번째 여행이었다. 


대부분 혼자 여행을 한다. 

멀리 배낭여행을 갈 때도, 가까운 곳에 여행을 할 때도 나는 혼자가 편하고 가볍고 자유롭다 생각했다. 


올해 세번의 여행 끝에 나는, '재미있다!' 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번째 여행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비유가 이상하지만, 마치 홍어삼합 같다고 할까? 뭐 그런 느낌이다. 


첫번째 한 가족들과의 여행에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함께 한 엄마가 가고 싶어했던 숲해설가가 들려주는 곶자왈을 따라가고, 

어린 조카가 가고 싶은 미로공원을 따라가고, 동생이 예약한 콘도에서 잠을 잤다. 

그 여행이 끝난 뒤, 함께 하는 여행은 내게는 여행이 아니라 노동이라고 생각했었다. 


두번째 오래고도 오랜, 늘 만나는 친구 두 명과 한 여행에서, 

각각의 친구와 여행을 한 적이 있지만, 셋이서 한 여행은 처음이었는데, 

친구 둘은 원래 친한 사이가 아니라 나를 사이(?)에 두고, 오랜 시간을 함께 안부를 전하던 친구들이었다. 

그 둘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던지라, 속으로 어떨까, 하고 걱정 아닌 걱정을 했더랬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2박 3일이라는 시간과 오래고 오랜 시간들이 녹아내려 어색할 거 하나 없이 하나가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늘 만나던 친구들이라 편했는지, 짬짬이 혼자하는 자유로운 여행이 그립기도 했다. 


세번째 서로가 오래고도 오랜 시간 전의 기억만 있는, 자주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 아이들을 키우는 친구들은 아이들을 다 키우고, 일을 하는 친구는 회사에서 자리를 잡고, 좀 한가한 나이가 되어 함께 한 제주 여행이었다. 

차에서 내리면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과 맛있는 먹거리가 있었고, 

차 안에서는 우리가 함께 어렸던 이야기와 보지 못한 동안 놀라운 변화를 겪은 우리와 서로에 대한 위로와 격려들이 오갔다. 

혼자라면 절대 가지 않았을 오직, 사진만을 위한 테마파크도 갔고, 사람들이 드글거리는 유명한 카페에도 갔다. 

여행이 끝나갈 즈음, 친구 중 한 명이, 두 명이, 세 명이 시간이 아까워 글썽였다. 


제주에서 살까 생각했을 정도로 제주를 많이 다녔다. 

비행기로 가기도 하고, 이제는 없어졌지만 인천에서 배를 타고 가기도 하고, 목포에서 배를 타고 가기도 했다

틈만 나면 제주도를 가,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고 하고, 버스를 타기도 하고, 한라산만 올라갔다 돌아오기도 하고, 멍하니 바다만 보다가 오기도 했었다. 


그때는 좋았다!

올해 세번의 여행, 재미있었다!


그래서 사실, 더 어려운 일이겠지만 혼자보다 여럿이하는 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첫번째 막역한 가족들과 함께 '함께'시간을 보내는 법을 알게 되었고, 

두번재 막역한 친구들과 함께 '함께' 움직이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고,

세번째 막역한 친구들과 함께 '함께' 노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번째, 두번째, 세번째가 아니었다면, '재미있다!'까지 가지 못했을 듯하다. 

어쩌면, 선물이었을까?


1월에서 5월까지 세번의 제주여행, 세번 모두 어쩌면 울며 겨자먹기 처럼 질질 따라간 여행이었다. 

혼자가 분연히 떠났던 여행이 무엇인가를 털어내었던 여행이라, 돌아온 길이 빈손이고 가볍기만 했다면, 

이 세번의 여행은 가족과 막역한 친구와 오래된 친구가 내게 준 선물들을 두 손에 들고 온 느낌에 가깝다. 


세번이 아니라, 한번의 여행인 것처럼, 

세조각의 퍼즐이 아니라 하나의 그림인 것처럼, 

세가지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음식인 삼합처럼,

이제야, 아................., 하는 느낌으로 세 번의 여행사진들을 본다. 


나는 뭐든 참 오래 걸린다. 




서귀포 숙소에서 본 한라산


용눈이 오름


송악산 


더럭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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